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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Oct 25. 2020

아기와 함께 한 학교생활

회사를 그만두고 저지른 첫 번째 일은 책방 운영이 아니라 대학원 입학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대학원 진학을 꿈꿨으나 그야말로 엄두가 안 났다.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는 업무 군이었다. 상사의 배려가 있다 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을 학교에 간다는 것도 수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고 과제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학생이 되니 학교 가는 날은 신이 났다. 학교 캠퍼스를 걷는 일도, 또 다른 동료가 생기는 일도, 새로운 공부를 하는 일도. 


“난 마흔 기념으로 박사 학위를 가질 거야.” 


말하고 다니던 때, 아기가 생겼다. 아기가 생긴 줄 모르고 박사과정 졸업시험을 쳤다.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며 좋아할 때쯤 아기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휴학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이미 학기의 한 달이 지난 터였다. 어느 전공 박사과정이 널럴하겠느냐만 과제 많고 공부할 것 많기로 소문 난 학과였다. 그러나 마지막 학기였다. 공부가 3년이 채워지면서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조금 힘들겠지만 남은 기간 잘 마쳐야 했다.


그렇게 아기와 난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갔다. 월요일에는 두 과목, 화요일에는 한 과목의 수업이 있었고, 월요일마다 연구소 회의가 한 건 있었다. 오가며 광화문과 홍대, 강남 일대에서 개인적인 회의를 한두 건씩 소화했다. 


수업은 힘들지 않았다. 몇 시간씩 앉아있는 것도 괜찮았다. 이전 학기까지 어려운(?) 과목을 모두 마쳐놓은 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제일 힘들었던 건 점심과 지하철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등하굣길이었다. 월요일마다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 사이 점심을 먹으며 편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브라운 백 미팅(brown bag meeting) 형태의 연구소 회의가 있었다. 입덧이 심해 음식을 못 먹는 건 고사하고 음식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코를 막아야 했다. 나는 가끔 샐러드를 주문해 먹었지만 1인분을 모두 먹지 못하고 남기기 일쑤였다. 회의가 없는 날엔 한가한 벤치나 강의실을 찾아 고구마 한두 개와 방울토마토 몇 개, 오렌지 주스를 먹었다. 하굣길에 배가 고프거나 머리가 아프면 밀크 맛 사탕 한두 개를 입에 물고 버텼다. 장시간 지하철 냄새를 맡는 일 역시 힘들었다. 장시간 서서 오게 되는 날이면 집에 오자마자 눕기 바빴다.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날이면 3만 원이 넘는 교통비를 내며 택시를 탔다. 


“아기가 훌륭한 학자가 되겠어.”

교수님의 응원 아닌 응원에 학기 중 논문도 한 편 썼다. 


“태교가 저절로 되겠어요.”

제발 그러면 다행이라며 과제와 공부에 힘썼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반대의 시선도 있었다. 


“공부가 뭐가 중요해. 나중에 천천히 하면 되지.”

나에겐 공부도 중요했다.


“아휴, 아기가 어지럽겠네. 지하철에서 무슨 책을 본다고.”

책은 내가 읽고 내가 어지럽지 않은데 아기가 어지러울까.


“아기가 힘들겠다. 엄마 욕심 때문에.”

아기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으나 힘들어하지 않는 건 알 수 있었다. 


왜 임산부는 일을 해도, 공부를 해도 이기적인 여자가 되는 걸까. 아기도 나도 괜찮은데 우리를 보는 시선은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런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학기를 A+ 두 개와 A를 받으며 수료했다. 아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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