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 다닐 때다. 옆 팀 여자 차장 A가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귀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A는 매일 다른 팀원보다 일찍 퇴근했고, 종종 지각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승진에서 자신이 누락되었다며 불만과 불평을 내비쳤다. 나는 차마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당연한 거 아냐?” 생각했다. 업무 속도도 느리고, 업무량도 적은 데다가, 다른 직원보다 업무 성과도 뛰어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던가. 사실 지금도 성과와 능력이 중요한 조직 내에서 무조건 배려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개인의 생애주기를 조직이 시스템으로 잘 받쳐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기업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회사 내에서 남자 직원의 육아 휴직은 없었다. 내가 퇴사를 하고서야 남자 직원들의 육아 휴직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오빠, 육아 휴직 언제 할 거야?”
그에게 물었다. 확실한 답을 바라지 않는 물음이었다. 나는 나의 출산에 맞춰 당장 신랑이 육아 휴직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자의 육아 휴직이 늘고 있다지만 아직 일반적이지 않다. 여전히 승진 누락, 낮은 인사 점수 등 회사 내 불이익을 걱정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통계자료를 보면 육아휴직 사용자는 여성 52.2%, 남성 17.9%에 그치고 있다. 이 역시 기업 규모별로 들여다보면 매우 다를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경우 법정 휴직이 잘 지켜지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경우 육아 휴직은 먼 이야기니까. 더군다나 육아휴직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 사용도 드물다.
친구 D는 누구의 육아 잔소리도 싫어 독박 육아를 자청했고, 친구 E는 친정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모두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부부지만 여자만 육아 휴직을 했다. 이들은 조만간 비싼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할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들의 선택지 안에 남편의 육아 휴직은 없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끝 장면은 정말 당황스럽다. 마음의 병까지 앓은 지영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한 것이 영화의 엔딩이라니. 이건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 하물며 시어머니의 반대로 육아 휴직을 주저하는 남자라니, 그것을 수긍하는 여자도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 역시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시어머니 말에 곧잘 무너지곤 한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 힘이 빠지는 말들이다.
출산 이 삼 개월 전의 일이었다.
“출산 휴가 며칠이니?”
“출산 휴가는 한 달이고, 육아 휴직은 일 년이요.”
“남자가 무슨 육아 휴직이야... 며칠 휴가 내면 되지.”
“요즘 남자도 다 육아 휴직해요.”
“그럼 돈은?”
“3개월 정도는 월급 나오고 나머진 무급이에요.”
“남자가 육아 휴직을 왜 해. 애는 여자가 보는 게 낫지.”
자기 아들에게 육아 휴직을 종용할까 걱정이었을까. 사회적 편견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남자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사회나 조직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었다.
내가 그의 육아 휴직을 바라는 건 아기 돌봄뿐만이 아니다. 아기가 생기면 하루하루가 이벤트다. 주먹 쥔 손을 펴고, 옹알이하고, 뒤집기를 하고, 일어서고, 걷고, 엄마, 아빠를 부르고, 노래하듯 말한다. 모두가 세상 단 한 번뿐인 이벤트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다. 나는 이 모든 날을 그와 함께하고 싶다. 셋이 되었으니 셋이 살고 싶을 뿐이다.
여자의 육아 휴직만큼이나 남자의 육아 휴직도 당연한 사회는 과연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