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가 임산부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커피 마셔도 되나요?”다. 2019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1년 동안 마시는 커피가 358잔, 세계 평균 소비량이 132잔이니 거의 3배에 가깝다.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한 나라기도 하니 커피 사랑은 어느 나라 뒤처지지 않는다.
회사 다닐 때는 하루에 3잔, 퇴사 후에는 매일 1잔은 마셨다. 커피는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주고 기분을 전환해 주고 정신도 각성시키며 쉬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더군다나 나는 읽고 쓰는 일을 시작할 때 루틴처럼 커피를 마신다. 카페에서, 책방에서, 서재에서, 여행지에서 장소와 관계없이.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커피와 담배는 글 쓰는 사람에게 놓지 못하는 생의 기쁨과도 같다.
임신 후 걱정 중 하나는 맥주와 커피였다. “너무너무 먹고 싶으면 어쩌나?”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이 우스울 만큼, 나의 지옥 같은 입덧은 맥주는커녕 커피 냄새마저도 지옥의 쓰레기장 한가운데 서 있게 만들었다.
그러던 24주 차였다. 문화역서울에서 열린 ‘호텔사회’ 전시를 보러 갔다. 근대 서울에 관해 관심이 많은 나는 100년 전 경성역의 모습과 호텔, 카페 문화를 놓칠 수 없었다. 전시장에서는 이벤트로 근대 카페를 만들고 커피를 주었다.
“안 그래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신랑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줄을 섰다. 멀찍이 서 있던 나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커피니 나 대신 마시라며 함께 줄을 섰다. 그리고 우린 아메리카노 한 잔과 라떼 한 잔을 얻었다.
“내 몫까지 두 잔 다 마셔.”
“라떼 맛있다. 한 모금만 마셔봐.”
쓴 냄새는 여전했다. 하지만 용기 내 부드러운 거품을 씁- 마셨다.
“응?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시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아, 내가 꿈만 같았던 커피를 마셨다. 입덧이 나아진 건지 이 프릳츠 커피가 입맛에 맞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날 이후로 종종 커피를 마시러 다녔다. 그러나 배가 눈에 띄게 나온 후에는 커피를 주문하거나 마시는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닿았다. 처음엔 처음 느껴보는 시선에 당황했다. 그리고 나에게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커피 마셔도 돼요?”
“아기한테 좋은 것만 먹어야지.”
“먹으면 안 되지 않아요?”
아르바이트생이 “디카페인으로 드릴까요?” 묻는 일도 많았다. 앞선 배려이자 교육받은 고객 서비스겠다. 그럴 때 난 어느 날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고 다른 날은 일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임신 후기가 되면서 그나마 가끔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치즈피자가 있었다. 그때마다 난 콜라와 함께 먹었고 속이 더부룩할 때 탄산수가 시원치 않아도 콜라를 마셨다. 평소에도 잘 먹지 않던 콜라를 일주일에 작은 사이즈 두세 캔 정도 마셨으니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은 콜라를 마신 때다. 콜라를 먹은 날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고 커피를 마신 날은 콜라나 다른 음식을 먹을 때 주의했다.
임산부 하루 카페인 권장량은 200mg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카페인 150mg이니 하루 한 잔은 괜찮다. 커피믹스는 약 50~60mg, 콜라 한 캔(250ml)은 23mg이라고 한다. 다만 커피 외 초콜릿, 사탕, 녹차 등 다른 음식에도 카페인이 일부 들어있으니 주의하면 된다. 혹자는 “임산부는 절대 카페인을 먹으면 안 돼. 아기에게 해로워.”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난 술, 담배 빼곤 먹고 싶은 건 다 먹어도 된다는 임산부였다. 커피도 콜라도.
임산부가 되면 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잔소리를 듣게 된다. 나를 진정 위한 것이라 생각이 들지 않은 때가 있어 잔소리라고 칭했다. 콜라를 마시면 아기가 까맣게 나오고, 닭을 많이 먹으면 아기 피부가 닭살이 되고, 빵 같은 밀가루 음식은 아토피 생길 수 있고, 곶감은 철분흡수를 막아서 안 되고, 팥은 자궁수축을 일으키고, 회는 혹시나 배가 아플 수 있으니 안 되고, 등등. 나의 아기는 내가 가장 걱정하지 않을까? 어느 임산부가 자기 아기에게 해로울 만큼의 음식을 먹을까.
정보는 많지만 정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임신, 출산, 육아에는 카더라 통신이 참 많다. 나 때는 이랬어, 예전에는 이렇게 했지, 옆집 아줌마가 그렇다던데, 내 친구는 그렇게 했대, 따위는 믿지 않는다. 병원에서 얻은 정보를 가장 신뢰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의사 말보다 친정엄마, 시어머니가 한 말을 듣고 난감해진 경우를 종종 봤다. 궁금한 건 의사에게 묻고, 이상하면 병원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