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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Oct 12. 2020

12주의 기적은 없었다

임신 후 “내가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은 나중 문제였다. 그보다 먼저 40주를 건강하게 버티는 게 급선무였다. 특히나 나는 임신 후에도 몸무게가 변하지 않았을 정도로 입덧이 심했다. 단순히 먹지 못하는 고통 이상이었다.


임신 기간에는 한 달에 한 번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간다. 임신을 확정(?)받은 후 나는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어 보리라 생각했다. 살면서 가장 큰 재미가 먹는 거라지만 맘 놓고 몸 놓고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임신 7주 차가 되면서 잘 먹기는커녕 제대로 먹기도 힘들어지고 냄새조차 못 맡는 지경에 이르렀다. 9주 차 검진에선 무려 몸무게가 4킬로그램이 줄었다. 간호사는 이 몸무게가 맞냐며 반문했고 매달 내 몸무게와 내 입덧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음식 냄새를 맡으면 욱욱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가던 드라마 속 장면은 비현실이었다. 음식을 계속 먹어야 속이 아프지 않는 먹덧은 바라지도 않았고, 먹으면 토하는 토덧처럼 삼키고 토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냄새가 역겨워진다는 냄새덧과 양치할 때 구역질을 하게 되는 양치덧까지 모든 입덧이 합해진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임산부였다. 


음식 냄새는 지옥 같았고, 맛은 썩은 한약과 담뱃재에 지옥을 소스로 버무린 맛이랄까. 난 그 지옥을 도저히 삼킬 수 없어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먹으며 버텼다. 입덧의 절정이라는 8주와 9주를 넘기며 조금 안심하기도 했다. 버티며 입덧이 대부분 끝난다는 12주의 기적을 기다렸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핸드폰 메모장에 매일 하나씩 쓰면서. 그러나 나에겐 12주의 기적은 오지 않았다.


“저 입덧이 너무 심해서 못 먹어요.”


입덧이 심하니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고 무기력한 하루도 늘어갔다. 입덧을 완화해 준다는 처방 약도 소용이 없었고, 컨디션을 좋게 해준다는 링거는 그날뿐이었다. 


“나도 임신 기간 내내 미식 거렸어.”

“괜찮아, 먹덧으로 바뀔 꺼야."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거 아냐?”

“애를 생각해서 먹기 싫어도 먹어야지.”

“심리적인 이유로 못 먹는 거 아닐까?”


나쁜 의도가 아니란 걸 알지만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난 좌절했다. 전혀 위로도 공감도 도움도 되지 않는 말들이다. 


임신 기간 집에선 밥 짓는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 가장 참기 힘든 냄새는 담배 냄새와 밥 짓는 냄새였다. 먹는 건 못 먹는다 하더라도 음식 냄새가 쓰디 쓴 지옥 냄새 같아서 밖을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긴 입덧이겠지 하며 18주, 20주, 25주 기다렸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한두 개 더 발견하게 될 뿐이었다. 내 몸은 분명 내 것인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알 수 없었다.


"아기 낳을 때까지 입덧하는 사람도 있데.“


그렇다. 그 사람이 나였다. 초기에는 고구마, 방울토마토, 생 오렌지 주스, 우유, 중기에는 크림수프, 양송이수프, 치즈, 후기에는 냉면, 부추전, 만둣국, 스콘, 사과를 먹었다. 아니 먹을 수 있었다. 신랑도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신랑은 남편도 함께 입덧을 한다는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신랑도 살이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제가 너무 못 먹고 몇 개 음식만 먹는데 괜찮을까요?”

“아기는 괜찮아요. 엄마가 힘들어서 그렇지.”


선생님은 아기는 건강하다며 걱정 말라 했지만, 나는 엄마가 몸 상태가 좋아야 아기도 좋을 것 같아 최대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이제 나만 생각하면 안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삶에 아기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결국 난 출산 전날까지 입덧했고, 출산 후에도 참기름과 등 푸른 생선은 냄새가 고약하다며 한 달을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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