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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Oct 19. 2020

핑크색 배지를 달고

지하철엔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왜 임산부석이 아니라 임산부 배려석이라 부를까? 그리고 왜 노약자석은 노인석이 되었을까.


임산부가 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핑크색 배지를 받는 일이었다. 산모 수첩을 가지고 보건소에 가면 받을 수 있다. 핑크색 배지는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 필요하다. 하지만 핑크색 배지가 있다고 자리를 양보받기는 쉽지 않다. 배려석은 ‘비워두기’를 권장하지만 대부분 비임산부가 앉아있기 일쑤며, 배지를 보아도 불룩 나온 배를 보아도 자리를 내어주는 이는 드물다. 핑크 배지를 단 나를 보아도 많은 사람이 눈을 감거나 핸드폰에 열중하곤 했다. 얼마 전 임산부의 날을 맞아 실시한 보건복지부 설문조사 결과도 역시나 임산부 54.1%는 ‘타인으로부터 배려받지 못했다’고 답한 것과 마찬가지다. 나 역시 배려받기 위해 배지를 달지 않았다. 나는 임신 초기나 두꺼운 옷 등으로 배가 드러나지 않을 때 당당하게 앉아있기 위해 핑크색 배지를 달았다.


그래도 난 지하철을 타면 핑크색 배지를 달고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섰다. 다른 자리보다 앉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종종 비어있기도 하며 배려받기도 한다. 그래서 때론 임산부끼리 자리 경쟁도 한다. 배려석이 있는 지하철 맨 앞과 뒤 칸 문에는 핑크색 배지를 단 여러 명의 임산부가 서 있기도 한다. 어떤 임산부는 “저 임산부인데 자리 좀 비켜주세요.” 말하던데, 난 단 한 번도 자리를 먼저 비켜달라고 하지 못했다. 다소 겸연쩍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혹시나 나를 밀치거나 위협하고 시비를 걸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얼마 전이었던가. 임산부가 맞냐며 배를 들치고 어른한테 자리를 양보하지 않냐며 위협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후에도 자리에 앉겠다며 임산부석에 앉으려면 임산부를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별로 놀랍지 않은 일들이다. 아직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내가 임산부가 아니었을 때 비슷한 일을 실제로 지하철에서 목격했다. 한가로운 평일 오후 지하철이었다. 젊은 임산부가 노약자석에 앉았다. 등산복 차림의 노인이 그 앞을 지나가다 “젊은 년이 왜 여기 앉아?”라며 시비를 건다. “임산부예요.”라고 옆에 앉은 다른 노인이 막아섰다. “애 낳는 게 뭐 대수라고. 임신한 건 맞아?”라며 술 취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히 젊은 남성이 막아서자 조용히 그 노인은 옆 칸으로 사라졌지만 만약 그 남성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설마. 요즘은 다 잘 비켜주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니요. 제가 얼마 전까지 지하철 타는 임산부였거든요.” 아마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가끔은 대중교통에서 임산부는 치욕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위협을 받기도 한다는 것을.


임신 초기 어느 날, 내가 배지를 달지 않고 배려석에 앉아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한 노인이 내 앞에 서더니 자꾸 내려다본다. 그러다 이내 “아이고, 다리가 너무 아프네.” 혼잣말인 듯 연신 내뱉는다. “저 임산부인데요.” 말했더니 “큼 큼” 콧소리를 내며 다른 젊은 여자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루는 핑크석에 누가 봐도 비임산부인 중년 여자가 앉아 있었다. 사람이 꽉 찬 지하철에서 과자를 먹으며 과자 부스러기를 바닥에 털어내고 있었다. 부스러기는 내 신발 위로도 떨어졌다. 나는 자리보다 신발 위 부스러기가 더 거슬렸다. 그때 마침 수능을 막 마친 것 같은 학생이 엄마에게 귓속말한다. 그리고는 이내 나에게 손짓하며 “여기 앉으세요.” 자리를 내어준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보고도 안 비키네.” 학생의 엄마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지만, 중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자 부스러기를 다시 바닥에 털어냈다. 


이외에도 황당한 일은 많았다. 퇴근 후 지하철에서 신랑을 만나기로 했다. 플랫폼 번호를 확인하고 지하철을 탔다. 좌석에 앉아있던 신랑은 내가 가까이 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산부인 나에게 손짓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내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냉큼 앉아버렸다. 너무 황당해 잠깐 멈칫한 후 “저기요.”라고 불렀으나 쳐다만 볼뿐 일어나지 않았다. 그 옆에 앉아있던 중년 여성이 “여기 앉아요.”라며 일어났다. 옆에 앉아 핑크색 배지를 보이게 무릎에 두어도 눈 한 번 꿈쩍하지 않는다. 또 한 번은 임산부 배려석에 중년 여성이 앉아있었고 그 앞에 중년 남성이 신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 옆에 앉은 젊은 여자가 나를 보고 여기 앉으라 손짓하며 일어섰다. 그때 중년 남성이 엉덩이를 들이밀었고, 그녀는 재빨리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임산부니까 자리 양보해주세요.” 하는 수 없이 일어나는 남자다. 


반대로 배려석이 아니더라도 자리를 양보받는 일도 있다. 대부분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은 내 또래다. 겹겹이 사람이 꽉 찬 지하철 안, 어떻게 내 가방에 달린 배지가 보았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 틈으로 여기 앉으라며 나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저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 손짓하며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금방 내릴 거라며 극구 사양해도 한 정거장이라도 앉아가라기도 한다. 아마 그들은 직간접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이들일 것이다. 자신이, 아내가, 친구가, 누나가, 언니가, 혹은 동생이. 나의 신랑 역시 내가 임산부가 된 후로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겐 언제나 자리를 내준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핑크색 배지가 잘 보이더라고.”


임산부가 지하철을 타면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힘들겠다.” 하는 측은한 시선과 “저렇게까지 회사를 다녀야 해?” “저럴 거면 택시 타지.” “배가 저렇게 나왔는데 일하나 봐.”라는 혐오의 시선. 어쩌다 임산부는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일까. 여성의 배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텐데. 지난해 4호선 지하철 모든 칸에서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에 크게 X 한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임산부석은 고정석이 아니고 선택적 양보를 하는 배려석이다 보니 계속된 갈등과 편견이 생긴다. 사회적 오해와 편견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 힘들고 지하철 방송이나 포스터 등 단순한 홍보만으로 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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