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 뉴스레터 읽기
인공지능 기반의 큐레이션은 빠른 정보 처리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개인이 좋아할 만한 취향을 분석해 제공한다. 내가 들은 노래, 유튜브에서 시청한 콘텐츠, 구입한 책의 목록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데이터에 편입되고, 그 정보들은 내 취향에 꼭 맞는 얼굴을 갖추고 돌아온다.
사람은 33세 이후로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빙성이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나의 취향과 알고리즘의 흐름을 보고 있자면, 한 취향이 굳어지는 일은 비단 음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다.
줄어드는 용기 탓인지, 내 취향을 안전하게 즐기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지 나는 갈수록 좋아하는 음식만 먹고, 좋아하는 노래만 듣고, 가던 곳만 찾는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나라는 사람의 세계가 유지되기는 커녕 좁아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취향의 영역은 어떤 뉴스를 선택하느냐로도 발을 뻗는다. 시끄러운 정치 얘기는 보고 싶지 않다.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크고 자주 들리는 뉴스 자체를 거부하고픈 마음도 든다. 듣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 같고, 그런 동안에 내 세계는 안전해 보였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셜 미디어 관계자들이 소셜 미디어의 해로움을 전달하는 이야기다. 소셜 미디어는 사용자가 미디어를 가능한 오래 사용하게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영상과 콘텐츠를 가능한 취향에 가깝게 찾아내 제공한다. 알고리즘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콘텐츠를 받아들이다 보면 나 역시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를 모른 채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 때문에 만들고 싶었던 습관은 신문 읽기였다. 신문사 홈페이지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하면 바로 볼 수 있는 포털에서도 중요하거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메인 뉴스를 바로 볼 수 있지만 굳이 종이 신문을 택한 건 취향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헤드라인에 의지해 뉴스를 보다 보면 바꾸려 애써도 호기심이 일게 만드는 제목 위주로, 관심 있는 분야 위주로 뉴스를 읽게 된다. 신문 한 부를 통째로 읽으면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는 정치, 경제 주제도 한 번씩 눈길을 주게 된다. 모든 이야기에 똑같은 노력과 관심을 들여 읽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게 되고, 거기에서 새롭게 찾아내는 관심사도 생긴다.
신문을 읽어내는 데는 40~50분 정도가 걸린다. 모아 보면 많아 보여서 어떻게 뉴스를 읽는 데만 한 시간씩 들이 수 있느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휴대폰을 들어 생각 없이 뉴스를 읽는 자투리 시간을 합한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신문을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만지던 습관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아이디를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메일 전용 아이디로 사용한다. 그러면 업무나 일상 때문에 받는 중요한 메일과 헷갈리지 않는다. 매일 다른 시간에 발송되는 뉴스레터들을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시간을 이용해 읽는다. 가끔 시간이 붕 뜨거나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데 읽을거리가 없을 때 짬짬이 읽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뉴스레터를 구독해놓고 영원히 읽지 않은 채 쌓아두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그 주제와 관련된 뉴스레터를 찾아 읽고, 새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새로운 관심사를 확장한다. 콘텐츠를 읽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기에 주기적으로 구독과 해지를 반복하면서 가급적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접하려 한다.
이전에는 좋아하는 이야기를 내가 선택하고 있다고 ‘믿었다’면, 지금은 배의 방향키를 알고리즘에게 넘겨도 문제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여정에서 아예 벗어나서 살기는 어렵겠지만 갈수록 공고히 굳어질 나의 취향에 나름대로 균열을 내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나의 세계가 넓어지길 바라며, 내 세계의 끝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이야기를 즐겁게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