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감옥: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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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왜 그렇게 받아들여?"

이런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처음엔 상대방의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경험.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의심하게 되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그 과정. 가스라이팅이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시작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44년 영화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영화 속 남편이 아내의 정신력을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 가스등의 밝기를 조작하면서도 "가스등은 변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죠.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은밀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의 무서운 점은 그 은밀함에 있습니다. 물리적 폭력과 달리 눈에 보이는 상처가 남지 않지만, 대신 피해자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민감한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게 하죠.


직장에서, 가정에서, 연인 관계에서,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도 가스라이팅은 발생합니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포장지에 싸여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분별하기 어렵고,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와 조작은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에게 감사함까지 느끼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가스라이팅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엔 상대방이 나를 위해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려는 선의라고 믿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들었던 말, 내가 행하는 행동, 느꼈던 감정들이 모두 "잘못한 일"이 되거나 "과장된 것"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상대방은 항상 옳고 저는 항상 틀렸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은 상대방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뇌는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끊임없는 자기 의심이 그 자리를 차지했어요. "나는 틀렸을 거야"가 입버릇이 되었고, 작은 결정조차 혼자서 내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내 뇌가 상대방의 원격 조종을 받는 것 같았죠.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오랫동안 흔들린 자아를 다시 세우는 일은 마치 부러진 뼈가 아무는 것처럼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죠.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강해서 부정적인 메시지로 채워졌어도 다시 건강한 생각들로 덮어쓸 수 있습니다. 타인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현실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되찾을 수 있어요.


가스라이팅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자신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 열쇠를 찾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인식하는 것입니다.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신호들을 놓치지 않는 것.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 내 경험을 나누는 것, 상대방의 해석을 경계하는 연습을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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