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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비가 자주 오락가락하네요. 준비성이 철저하지 못한 저는 일기예보를 보는 대신 그저 집을 나서는 순간의 날씨에 의지합니다. 그렇게 사게 된 우산이 집에 쌓여있고, 매번 우산을 사느라 돈을 낭비하고 있죠.
현관 우산꽂이를 들여다보면 제 삶의 패턴이 한눈에 보입니다. 초록 장우산 하나, 접이식 우산 두 개, 투명한 비닐우산 네 개. 각각은 서로 다른 날의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증명하는 물증들입니다. 지하철역 앞 편의점에서 급하게 집어든 것, 회사 근처 문구점에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고른 것, 제대로 된 걸로 사자 하며 비싸게 산 것까지. 하나하나가 그때그때의 임시방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우산들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늘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우산만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보조배터리를 여러 개 사놓고도 정작 필요할 때는 충전이 안 되어 있거나, 이어폰을 여러 개 사놓고도 늘 어디에 뒀는지 몰라 헤매거나. 저는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당장의 불편함을 없애는 데만 집중해 왔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하는 대신, 문제가 생겼을 때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쉽고 빨랐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임시방편들이 쌓이고 쌓여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산꽂이에 무자비하게 꽂힌 우산들을 보면서 제가 살아가는 방식의 축소판을 보았습니다. 철저하지 못한 준비성, 당장의 해결을 선호하는 성향,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패턴까지.
얼마 전에도 비 예보가 있었고, 저는 접이식 우산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결국 비는 내리지 않았고 가방은 무거웠지만 저는 우산꽂이 앞에서 묘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변화는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우산을 챙길지 말지 미리 결정해보려 합니다. 우산꽂이에 늘어선 우산들이 마지막 컬렉션이 되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