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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Oct 30. 2019

시월, 안양

예술보다 아름다웠던 가을에 머물다.

가을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다. 땅바닥을 뒹구는 낙엽 조각, 하늘이 불타오르는 유난히 빨간 석양, 예술품 사이로 유난히 반짝이는 강렬한 빛. 이 모든 이미지들은 2010년의 시월에서 시작되었다. 시월의 어느 날 빨개진 후미등을 따라 석양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는 그 날로 돌아간다. 


이 날은 단짝 친구 두 명과 예정 없는 나들이를 하기 좋은 날이었다. 9년 전의 나도 시월을 가장 사랑했기 때문에 느닷없는 나들이가 몹시 기꺼웠다. 사방으로 예술품들이 널려있었는데, 늘쩡거리는 사이에 단풍 사이에 가득했던 빛이 호화로웠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공간이다. 최근까지 3년에 한 번씩 꾸준히 찾던 일본의 세토우치보다 훨씬 이르게 공간을 작품으로 탄생시킨 셈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 여행에 대해 말하자면 카메라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이 날은 올림푸스 PEN-EE3을 들고 갔다. 필름을 아끼려고 1장을 두 개의 프레임으로 나누는 찍는 재미있는 녀석이다. 보통은 콘셉트를 잡아 셔터를 누르는데, 장수를 잘못 계산하는 순간 사진들이 밀리고 사진은 순식간에 엉망이 된다.



바로 이렇게. 

석양으로 물드는 산의 경계와 아직 저물지 않은 산을 찍고 싶었는데 이렇게 교차되어 두 사진 모두 내게 베스트 컷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제법 이야기가 된다 싶다. 필름은 본래 한 줄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냥 이렇게 잘린 것일 뿐 다시 이어붙이면 될 뿐이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정해진대로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망칠까봐 두려웠는데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세상에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카메라 녀석은 햇살에도 엄청 예민한데 빛이 조금만 모자라도 시커멓게 죽어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이 사진 이후로는 시커멓게 죽은 사진들만 가득하다. 문득 이렇게 안양을 떠올리며 친구에게 이 날을 묻자 여전히 단짝인 친구가 말했다.


- 그날이 너무 좋아서 다시 갔는데, 그 느낌이 아니더라..?


아마도 어린 나와 어렸던 그녀의 감성이 그 날의 시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가을, 시월이 주는 힘이 생각보다 대단하여 그 공간을 매력적이게 만들어줬던 걸지도. 어쨌든 시월의 마지막 날을 하루 남겨두고 시월에 대해 무언가를 남기고, 9년전 시월의 오늘을 떠올리게 하여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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