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머무는 곳에 예술이 함께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은 대게의 사람들이 '왜?'라고 묻는 곳들이 많다. 지금은 인기가 많은 부산의 감천마을이나 서촌 같은 공간. 최근에는 더 세련되지고 예뻐졌지만 나는 처음의 투박함이 더 좋다. 오래도록 사람이 살아왔고, 조금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 그 와중에 하나하나 소박한 공방들이 생기면 더욱 좋다. 삶이 머무는 곳에 예술이 한 스푼 더해져서 감칠맛이 난다고 할까.
누군가의 결혼식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문래동을 찾았다. 사진을 볼 때마다 한 번쯤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는 길이 복잡했던 탓이다. 거센 바람에도 이곳을 찾은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한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유난히 호불호가 강할 것 같은 느낌의 공간이다. 바람이 세게 불고 철 냄새가 났다. 사람이 없는 길은 적막하고 두꺼운 쇠문으로 막힌 노동의 공간은 그곳에 찍고 싶어 온 이들에게 탐색의 대상이 된다. 그 틈새로 렌즈를 비집고 신성함을 찍어보겠다는 그들이 마냥 대단해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들의 언 손을 보면 주머니 속 따뜻한 내 손까지 시린 것 같았다.
예술하는 이들의 공간이란 언제나 반갑고, 신기하다. 그리하여 나는 또 문래동이 마음에 들었다. 한껏 오른 홍대 땅값도 그랬을 테고, 예술가들은 이 공간에서 예술의 내음을 맡았을 거다. 처음에 이 공간에서 예술을 시작하자 마음먹은 이는 분명 자유롭고 삶을 사랑하는 이가 아닐는지. 잘은 모르지만 그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예술가의 공간이 되면서 이 곳 사람들은 삶을 침해받는 모양이다. 예술적인 공간의 곳곳에는 안내문들이 붙어있다. 내 삶을 다큐로 만드는 그 순간을 마냥 즐길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다. 더군다나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것 같다. 그저 삶일 뿐인데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는 순간, 신성한 노동의 순간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박제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문 연 곳은 별로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일요일이 나쁘지 않았다.
작은 공방들과 빵가게, 선술집과 밥집. 그 모든 것들은 일층짜리 건물이고 문래동 특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카메라가 없는 어느 날에 문래동의 작은 가게에서 술 한잔을 느긋하게 걸치는 건 얼마나 좋을까. 그때 꼭 함께 해야 할 사람은 오랜 시간 내 취향을 알아주는 진한 친구 녀석 둘. 물론 몹시도 멀고 먼 이 곳에 함께 하자 하면 웃긴다며 콧방귀를 뀔 테고, 그리하여 나 역시 포기하고 집 앞 카페에나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겠지. 그래도 이런 술집에서 한 잔 걸치면 서로 숨겨두고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토해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꼬셔도 그녀들은 쉽게 넘어오지 않을 테지만.
시린 손을 비비며, 돌아오는 길 아쉬움에 이미 돌았던 골목을 빙글빙글 다시 돌았다. 추워서 얼른 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다못해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커피 한잔이라도 마셨을 텐데. 본 것을 또 보고 찍은 사진을 돌려보고 안 찍었다며 또 찍고. 막상 돌아오니 쓸 사진이 없어서 다시 그 때의 사진을 뱅글뱅글 돌아본다.
사진을 보다 보니 아마도 다시 찾지 않은 문래동 어귀에 작은 동판으로 새겨놓은 지도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문래 올래?' 여전히 가기에는 너무 멀고, 복잡하지만 언젠가 또 서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