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아프다. 걸음이 느려진다. 너는 나보다 빠르다. 나는 뒤쳐진다. 그리하여 나는 너의 뒤에 서 있다.
솔직하게 위의 말은 비약에 가깝다. 왼쪽 무릎을 크게 다치기 전에도 나는 뒤쳐질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지금의 몇 배나 셔터를 눌렀다. 그 많은 셔터에 마음도 일일이 담으니 시간이 두어배 더 들었다. 그리고 뒷 모습을 찍는 것은 마음이 편하다. 정말 찍어도 되는 내 지인이라면 모를까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렵다. 눈이 마주치고, 그 순간 내 셔터가 그 사람한테 어떤 불쾌감을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참기 어렵다. 그러나 뒷모습이라면 훨씬 편하다. 뒷짐을 엉성하게 쥐고 있거나 누군가와 손을 마주잡고 꼭 쥔 태나 어깨에 여자아이를 올린 아버지. 그 모든 것은 꼭 앞모습이 아니라도 아름다우니. 다른 이유도 있다. 천성적인 느긋함이다. 손을 뒤로 모아 뒷짐을 지고 남들보다 두세배의 시간을 사는 냥 그저 늦장을 부리는 순간 나는 즐겁다. 그리하여 나는 너의 뒤에 서 있다.
2010년 사월, 제주
나의 이야기가 많았던 제주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 사진을 후루룩 돌아보니 너희들의 뒷모습이 많다. 너희들의 뒷모습은 아주 친근하고 다정하지는 않지만 보폭을 맞추어 옆에 서있는 것만으로 우리가 친구인 것을 알겠다. 사진 속에는 등장할 수 없으나 이 순간 집중하여 셔터를 누르는 나를 생각하니 우리는 친구가 확실하다.
이제 만난 지 십년이 넘었고, 어쩌면 접접을 십년 전의 어느 경계에만 걸치고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십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은 가까울수 있는 만큼 멀어질 수 있는 시간과도 같으니 우리의 노력에 어깨를 토닥여줄 필요가 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쏟아야 하는 많은 에너지를 서로에게 열심히도 쏟았다. 고맙다.
2010년 사월, 제주
콩알만한 너의 뒷모습을 보니 나는 이런 사진은 왜 찍었나 피식 실소가 난다. 그 순간에도 먼 바다 끝을 향한 너와 썰렁한 바람 사이로 물끄러미 너를 멀리서 보았다.
나는 너의 뒤에 서 있으므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너무 멀어지지 않을지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어느 새 둘도, 셋도 되는 어느 날 마다 나는 있는 없는 여유를 다 긁어모아 한참 너희 뒤에 서있다. 뒤에 서 있는 친구를 이따금씩 살펴 데리고 가주는 것은 너희 들의 몫이다. 그리하여 먼 어느 날 지금보다 더 달라질 서로의 삶의 위안을 주는 여행을 또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