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즈 Nov 08. 2019

삼월, 문래동

삶이 머무는 곳에 예술이 함께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은 대게의 사람들이 '왜?'라고 묻는 곳들이 많다. 지금은 인기가 많은 부산의 감천마을이나 서촌 같은 공간. 최근에는 더 세련되지고 예뻐졌지만 나는 처음의 투박함이 더 좋다. 오래도록 사람이 살아왔고, 조금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 그 와중에 하나하나 소박한 공방들이 생기면 더욱 좋다. 삶이 머무는 곳에 예술이 한 스푼 더해져서 감칠맛이 난다고 할까.


누군가의 결혼식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문래동을 찾았다. 사진을 볼 때마다 한 번쯤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는 길이 복잡했던 탓이다. 거센 바람에도 이곳을 찾은 건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5.삼월, 문래동1 / RICOH GR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한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유난히 호불호가 강할 것 같은 느낌의 공간이다. 바람이 세게 불고 철 냄새가 났다. 사람이 없는 길은 적막하고 두꺼운 쇠문으로 막힌 노동의 공간은 그곳에 찍고 싶어 온 이들에게 탐색의 대상이 된다. 그 틈새로 렌즈를 비집고 신성함을 찍어보겠다는 그들이 마냥 대단해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들의 언 손을 보면 주머니 속 따뜻한 내 손까지 시린 것 같았다.


예술하는 이들의 공간이란 언제나 반갑고, 신기하다. 그리하여 나는 또 문래동이 마음에 들었다. 한껏 오른 홍대 땅값도 그랬을 테고, 예술가들은 이 공간에서 예술의 내음을 맡았을 거다. 처음에 이 공간에서 예술을 시작하자 마음먹은 이는 분명 자유롭고 삶을 사랑하는 이가 아닐는지. 잘은 모르지만 그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015.삼월, 문래동2 / RICOH GR


하지만 예술가의 공간이 되면서 이 곳 사람들은 삶을 침해받는 모양이다. 예술적인 공간의 곳곳에는 안내문들이 붙어있다. 내 삶을 다큐로 만드는 그 순간을 마냥 즐길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싶다. 더군다나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것 같다. 그저 삶일 뿐인데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는 순간, 신성한 노동의 순간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박제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문 연 곳은 별로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일요일이 나쁘지 않았다.


작은 공방들과 빵가게, 선술집과 밥집. 그 모든 것들은 일층짜리 건물이고 문래동 특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카메라가 없는 어느 날에 문래동의 작은 가게에서 술 한잔을 느긋하게 걸치는 건 얼마나 좋을까. 그때 꼭 함께 해야 할 사람은 오랜 시간 내 취향을 알아주는 진한 친구 녀석 둘. 물론 몹시도 멀고 먼 이 곳에 함께 하자 하면 웃긴다며 콧방귀를 뀔 테고, 그리하여 나 역시 포기하고 집 앞 카페에나 죽치고 앉아 수다를 떨겠지. 그래도 이런 술집에서 한 잔 걸치면 서로 숨겨두고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토해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꼬셔도 그녀들은 쉽게 넘어오지 않을 테지만.  


2015.삼월, 문래동3 / RICOH GR


시린 손을 비비며, 돌아오는 길 아쉬움에 이미 돌았던 골목을 빙글빙글 다시 돌았다. 추워서 얼른 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다못해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커피 한잔이라도 마셨을 텐데. 본 것을 또 보고 찍은 사진을 돌려보고 안 찍었다며 또 찍고. 막상 돌아오니 쓸 사진이 없어서 다시 그 때의 사진을 뱅글뱅글 돌아본다. 


사진을 보다 보니 아마도 다시 찾지 않은 문래동 어귀에 작은 동판으로 새겨놓은 지도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문래 올래?' 여전히 가기에는 너무 멀고, 복잡하지만 언젠가 또 서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전 05화 이월, 방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