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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Jul 19. 2018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그 섣부른 판단이 상대를 외롭게도, 거리를 멀게도 한다.

항상 웃고 있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입꼬리는 늘 하늘을 향해 있었어요. 이 아이가 있는 곳이라면 없던 빛 마저 생기는 듯 환했습니다. 행복은 분명 전염성이 센 감정이에요. 아이가 지닌 밝은 기운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사람들의 어두운 그늘마저 강하게 끌어당겼지요. 말수가 적은 사람에겐 수다쟁이로, 경직된 사람에겐 미소천사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을 지닌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밝디 밝았던 아이가,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빛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습니다.  



너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아



아이는 이 말을 듣자마자 슬픔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없던 슬픔이 새로이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건넨 한 마디가 아이에게 잠재되어 있던 어둠을 건들고 만 것입니다. 아이는 슬픔을 한없이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옛 기억들. 가뜩이나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힐 때면 떨어뜨리지 않으려 어지간히도 애를 썼더랬죠. 입을 앙다물기도, 주먹을 꽉 쥐다 못해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패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우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울고 있는 모습은 못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쁜 것만 보여야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라 해주니까요.



울지 좀 마. 또 우니?  

넌 네가 울 때 얼마나 못난 줄 모르지? 



우리는 누구나 어딘가 어두운 그늘 한 칸쯤은 갖고 있잖아요? 아이에게도 그런 방이 존재했던 것뿐입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아이는 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습니다. 사진앨범에 가득한 웃는 사진들처럼. 과거의 순간 속 우리는 늘 웃고 있는 것처럼요. 


아이가 슬펐던 건 누군가가 무심코 건넨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진짜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자신을 안타까워한 탓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슬픔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가 중요한가요? 아이의 속은 겉과는 달리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걸요. 그리고 사람들은 아이의 웃음 속 가려진 눈물을 모르고 있고요. 모르죠. 누군가는 시간이 흘러 알게 될지도요.






오랜만에 집 청소를 했다. 사놓고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들. 먼지 덩어리들과 함께 나뒹굴다 내 눈에 띈 그것들은 결국 버려지게 되었다. 방을 쓸고 닦고 하면서 검게 묻은 종이들부터 정체모를 조각들까지… 한 데 모이고 나니 가관이었다. 큼지막한 명품 쇼핑백 안에 쓰레기들을 넣었다. 참 아이러니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쇼핑백에는 값비싼 물건이 담겨 있었는데. 포장지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내용물이 오물이면 영락없이 누더기로 전락하고 마는구나.  


불현듯 이게 내가 아닐까 싶었다. 겉모습은 번지르르, 얼핏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은 검고 더러운 먼지 구덩이가 나뒹구는 상태. 대개 사람들은 포장지만 보고 나를 판단했다. 밝고 명랑한 사람.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어둡고 우울하고 슬픈 사람인데. 그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 모습, 포장지도 내가 갖고 있는 여러 모습 중에 하나니까. 결코 거짓은 아니다. 


다만 포장지가 나의 전부가 아닌 것일 뿐. 한 사람을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갖고 알아가게 되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알게 된다. 그리고 착각한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고. 이 사람을 다 알게 되었다고. 그 섣부른 판단이 상대를 외롭게도, 거리를 멀게도 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몰랐던 사실이 아닌데 매번 새롭다. 바보같이. 


내가 만난 사람 1. 

계산기 같은 사람이 있었다. 빈틈 하나 없이 정해진 공식에 따라 삶을 사는 사람. 어떠한 예외도 존재하지 않았고 인정보단 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 피도 눈물도 없을 냉혈한 같은 이 사람. 하얀 눈이 내리던 날,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보고 누구보다도 해맑게 웃더라. 그 미소는 나에게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 따뜻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여지와 함께. 


내가 만난 사람 2. 

말과 행동, 표정에서 젠틀함이 묻어나는 사람이 있다. 깔끔한 외모와 함께 스칠 때마다 풍기는 향수 냄새. 게다가 시선이 마주칠 때면 그가 보여준 환한 미소는 그 사람의 인품까지 높은 점수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쯤 되면 뭐에 씐 게 분명했다. 그런데 웬걸? 정말 눈에 뭐가 씌었던 게 맞더라. 어느 날 택시 기사님께 또 레스토랑 종업원에게 무심코 짜증을 내는 그 사람을 보고 아차 싶더라니. 나에게만 친절하다고, 또 겉모습이 지적여보인다고 내면이 꽉 찬 사람은 아니라는 걸.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다. 처음 듣는 말이 아니다. 나는 왜 새삼 처음 듣는 사람처럼 매번 이 말이 새로울까. 나조차도 겉모습이 다가 아님에도,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만으로 나를 판단하려 할 때도 슬퍼하면서, 왜 나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섣불리 단정 지으려 들까.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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