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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6. 2024

내가 혐오하는 내 모습

네, 이렇습니다. 저는..

"저는 아무도 상처 주지 않아도 알아서 상처를 받는 능력이 있어요. 그리고 그 상처를 무시하거나 덮어놓지 않고 내내 뚫어져라 바라보는 습관도 있고요. 아주 최악이죠?"

김화진, <정체기>

(악스트 35호)



"선배, 저는요...... 사실 사람들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게 좋아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촌스럽고 의존적이고 속이 빈 것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가끔 이렇게 털어놓고 싶어 져요.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가 저를 좋아하는 일이, 몹시 중요해요. 한없이 그쪽으로 몰두하면 좋지 않을 걸 알아서 계속 경계하고 그 외의 것들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도...... 제가 하는 그 모든 일들의 밑바닥에는 끈질기게 그 생각이 들러붙어 있어요. 본령처럼요."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p.240 '쉬운 마음'



내가 혐오하는 내 모습은 많다.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은 부끄러운 순간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하지만 그런 사항들에 대해 세세하게 구구절절 솔직히 말할 수는 없다. 나란 인간도 사회적 위신과 체면이 있기에. 지저분하거나 더럽거나 음흉하거나 응큼하거나 저질스럽거나 야비하거나.... 그런 구질구질한 날들, 또는 사건들이 살다 보면 생각보다 꽤 있다. 최근에도 내가 생각하기에 나 자신이 '너무 구리다'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 복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좀 고민하다가 결국 '마음'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위에 인용한 소설 속 문장들과 같은 마음을 느낄 때가 살아오면서 꽤 많았고, 그럴 때 내가 아직 덜 자란 아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너무 뻔하고 쉬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 실망스럽다.  


이건 여담이지만 소설가는, 특히 김화진 소설가는 어쩌면 이렇게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잘 들여다보는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 다 익지 않은 열매를 먹을 때의 떫음이나 물컹하게 상해 버린 철 지난 과일을 먹을 때의 시큼함. 나의 마음에는 이런 면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제 이제 어쩌지.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바로 김화진 소설가 같은 사람이 벌써 써 버렸으니.


그래도 나는 나의 소설을 쓸 것이다.(언젠가는)

나의 시고 떫은 마음, 나의 서투르고 투박한 마음에 대해. (쓰고 싶다.) 하지만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쓰지는 않고 남의 글을 감탄하기만 하는 나를 혐오하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혐오한 내 모습은 '또 질투해 버린 나'(노력은 그다지 하지도 않으면서), '앞에서는 별 말 못 하면서 뒤돌아서서 속으로만 불평불만을 갖는 나'다. 이 일들 역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다. 이런 내가 구리고 유치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좋게 마무리하자면, 나는 이 모든 나의 단점(자격지심이나 열등감 등등)과 괴팍하고 고약한 면들에도 불구하고 나를 꽤 사랑하는 것 같다. 이 모든 나를 끌어안고 이고 지고 울며불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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