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출근을 20분 남기고 카페에 와서 이 글을 쓴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에서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고 경계한다. 엊그제는 나를 오래 보지도, 여러 번 만나지도 않았지만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드라이브를 갔다. 진심으로 내게 조언하는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밤이 되자, 왠지 후회가 밀려왔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안다는 듯이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알고 지낸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저는 저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아무리 오랫동안 나와 알고 지내온 사람이라도, 나에 대해 잘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불킥을 했다.
하지만 그의 조언이 진심이어서 나는 차마 그렇게 분명하게 내 마음을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 조언을 먼저 구한 사람이 나이기도 했고.
나는 그에게 무례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아서 내 생각을 말하지 못했고 이제 좀 이런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내 생각이나 의견을 분명히 잘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이 되자.'는 마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정말 악만 남은 곳이 될 것 같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정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구별해야 할 것 같다.
예수는 위선보다 위악을 더 나쁘게 보았다는 말도 있고, 장자는 위선도 나쁘지만 위악도 나쁘다고 했다는 것 같다.
어쨌든 마음을 위장하는 것 또는 위반하는 것이 모두 나쁘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