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풍광은 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싶다면 꼭 봐야 할 영화 <프로포즈데이>
아주 오래 전 봤지만 지금도 가끔씩 꺼내어 보는 영화 중 하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주인공의 매력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는 매력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포스터를 딱 봤을 때 남녀 주인공의 케미를 보고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한다. 일단 남녀 주인공의 외적 매력도가 높으면 그 영화를 보고 싶단 생각이 팍팍 든다. 어찌 보면 너무 외모지상주의 같지만 내가 말하는 '매력'은 외적으로 잘생기고 예쁘고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나는 이 영화의 예고편에서 '매튜 굿'와 '에이미 아담스'의 케미를 보고, 바로 "이건 꼭 봐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아일랜드의 멋진 풍광도 한몫했다. 내가 가 보지 못한 나라, 아일랜드, 그리고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앞으로 가 볼 기회가 있을까 말까한 곳이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매튜 굿'에게 빠져버렸다. 조인성과 정우성을 섞어 놓은 듯한 외모에 무심한 듯하면서도 다정함을 내면에 품고 있는 그 표정이 자꾸만 생각났다. 아주아주 오래 전, 학창시절에 <패컬티>라는 영화에서 '조쉬 하트넷'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정말 비슷했다. '이 배우 완전 뜨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정말로 조쉬 하트넷은 그 이후 승승장구를 했고, 매튜 굿 역시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 중이다. 매튜 굿을 나처럼 좋아한다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사건수사대 Q>를 강력 추천한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잘 나가는 아파트 연출가이자 멋진 의사 남친을 둔 애나는 남자친구와의 4주년 기념일을 맞이한다. 당연히 반지를 주는 줄 알았는데 귀걸이라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애나는 "네가 안 하면 내가 한다!"라는 신조로, 캐리어를 챙겨 출장 간 남친을 찾아 더블린으로 향한다. 아일랜드 전통에 따르면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윤년 2월 29일, 일명 프로포즈 데이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청혼을 해도 된단다.
세상에, 이런 날도 있다니. 아일랜드에 이런 전통이 있다느 건 처음 알았다. 책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면 그간 내가 알 수 없었던 정보들을 알 수 있어 너무 좋다.
애나는 부푼 가슴을 안고 남친을 향해 가는데 기상 악화로 더블린 공항이 폐쇄돼 웨일스로 우회해야 한단다.
결국 웨일스의 카디프 공항으로 착륙하게 된 애나. 무조건 29일까지 더블린으로 가 보려 노력하지만 기상 악화 때문에 모든 항공편이 마비돼 꼼짝도 할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배를 탔지만 뱃길도 막혀 원하는 곳이 아닌 ‘딩글’이란 곳에 내리게 된다.
만신창이가 되어 눈에 보이는 주점에 들어간 애나. 그곳에서 그놈, 아니 앙숙이 될 남자 데클런을 만난다.
애나는 더블린으로 가는 택시를 타게 해 달라고 하지만 남자는 연락처 하나만 툭 던져준다. 희망을 걸고 전화를 해 보지만 그 번호는 바로 데클런의 번호였다. 애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뭐 이런 이상한 놈이 다 있어!'
어쨌든 방법이 달리 없으니 이 이상한 놈에게 더블린에 데려다 달라고 하지만 데클런은 500 유로를 줘도 안 가겠다고 버틴다. 결국 애나는 데클런의 안내를 받아 주점 위층 호텔에 묵게 되는데. 말만 호텔이지 이건 뭐 엉망진창인 상태.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애나 때문에 건물 전체가 정전까지 된다.
다음날. 500유로에 자동차로 더블린에 데려다 주겠단 데클런. 그렇게 애나는 데클런과 동행하게 된다. 애나는 데클런에게 자신의 남자친구 자랑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하러 가는 중이라 말하는데 데클런은 애나를 가볍게 비웃는다. 남자가 청혼할 거라면 벌써 했겠다며. 뼈 때리는 말을 들은 애나는 화가 치민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탄 차가 고장이 나게 되고 서로에 대한 미움은 점점 커진다. 데클런은 견인차를 불러 차를 고치려 하지만 애나는 홀로서기를 결심! 지나가는 차를 잡아 더블린까지 가려다가 캐리어를 도둑맞게 된다. 그러던 중 도둑놈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캐리어를 돌려달라고 하지만 가볍게 무시하는 도둑놈들. 결국 데클런이 나서서 도둑놈들을 해치우고 둘은 다시 동행하게 된다.
데클런은 애나를 기차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지만 기차가 오기까지 2시간 반 정도 남은 상황. 둘은 데클런의 제안으로 아일랜드의 유명한 성인 발리카베리 성에 가게 된다. 성에 가는 길. 데클런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다.
“당신의 멋진 아파트에 불이 났다 칩시다. 60초 안에 나와야 한다면 뭘 가지고 나올 거예요?”
애나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반문하자 데클런은 정확히 알지만 안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애나는 발리카베리 성의 전설을 궁금해하고 데클런은 애나에게 성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준다. 전설 속 인물들은 마치 지금의 두 사람의 상황을 닮아 있다. 애나는 데클런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어쩐지 싫지만은 않다. 갑자기 폭풍우가 내리고, 애나는 기차를 놓치고 만다.
만일 데클런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사실 오래 전, 영화를 보며 나도 뭔가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안에 나만 있는 상황이라면 휴대폰과 지갑을 일단 챙길 것 같긴 한데, 일단 불이 나면 혼비백산해서 뭘 가지고 나올 정신이 있을까도 싶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결국 두 사람은 티퍼러리 최고의 모텔이라는 곳, 기관사의 집에 안내를 받아 가게 된다. 그런데 안주인은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면 절대 방을 줄 수 없다고 하는데. 결국 두 사람은 그들에게 부부인 척 연기를 하게 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 연기를. 침대는 하나. 서로 같이 자지 않을 거라 선언한다.
저녁 식사 자리. 애나와 데클런은 함께 요리를 하며 점점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주인 부부, 그리고 이탈리아인 부부와 함께하는 자리. 주인 부부는 보란 듯이 진한 애정 표현을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탈리아인 부부가 더 진하게 애정 표현을 한다. 그러다 애나와 데클런도 엉겁결에 키스를 하게 된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는데 나중엔 아주 진하게 하게 되고 둘 사이에 스파크가 팍! 튀어버린다.
그날 밤, 둘은 한 침대를 쓰게 된다.
다음 날.
애나는 남친 제레미에게 전화를 해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하고 제레미는 애나가 원하던 아파트를 계약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기뻐하는 애나를 보는 데클런의 마음은 어쩐지 좋지 않다. 내일, 그러니 29일까지 더블린에 가야 하는데 오늘 기차는 운행하지 않는다 하고, 애나는 기관사에게 차로 태워다 달라고 부탁하지만 들어주지 않자 심통이 난다. 결국 버스를 타고 더블린을 가기로 결심한 애나. 데클런도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그러다 우박이 떨어지자 근처 교회로 향하게 되고 우연히 한 커플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다. 그것도 밤까지.
들러리들 틈에서 함께 춤을 추게 된 애나와 데클런. 애나는 신부에게 실수를 하게 되고 홀로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애나는 데클런에게 밥맛이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게 연기인 걸 안다고 말한다. 겉으론 으르렁거리지만 고통에 빠져 있다는 걸, 손에는 사자처럼 가시가 박혀 있다는 걸. 그냥 사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자라며 고백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고백을 한다.
시간이 흐르고, 버스 정류장 벤치. 잠에서 깨어난 애나는 데클런의 무릎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데클런은 잠에서 아직 깨지 않은 상황. 애나는 먼저 일어나는데,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는 걸까? 아니었다. 잠에서 깬 데클런은 애나가 말도 없이 버스를 타고 떠나간 줄 알고 절망한다. 애나는 떠난 게 아니라 데클런과 함께 마실 커피를 사러 갔었다. 데클런의 처량한 뒷모습을 지켜본 애나는 맘이 짠해진다. 버스를 타고 함께 가자고 제안하는 애나. 데클런은 그 제안이 반갑기만 하다.
드디어 더블린에 도착한 애나와 데클런. 데클런은 더블린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이곳엔 기회주의자에 거짓말쟁이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애나는 그 사람이 데클런이 사랑했던 여자일 거라 추측한다. 데클런은 그런 애나에게 그 동안 하지 않았던 꽁꽁 숨겼던 그 여자, 케일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그리고 지난번 성에서 애나가 물었을 때 답하지 않았던 답을 해 준다. 자신에게 60초만 주어진다면 가지고 나올 물건.
그것은 어머니의 클라다 반지라고.
그런데 그걸 케일리가 가지고 있다고. 애나는 온 김에 그 반지를 찾아가라고 하지만 데클런은 말을 돌린다.
애나가 자신에 대해 신경이 안 쓰이는지 묻자 데클런이 의미심장한 대답을 한다.
“신경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그렇게 데클런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애나는 그 마음을 읽는다. 애나가 데클런에게 여정을 함께 해 준 대가를 지불하는데 데클런은 받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 두 사람 모두 웬일인지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데클런은 에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남아 다시 돌아가지만 그때 제레미가 짠 하고 나타난다. 에나가 딩글에서 더블린까지 자신을 태워다줬다며 데클런을 소개한다. 그리고 곧이어 제레미는 애나에게 무릎까지 꿇고 청혼한다. 두 사람을 보던 데클런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데클런은 애나의 말대로 케일리를 만난 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홈파티를 하던 중, 애나는 제레미가 자신을 사랑해서 청혼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원하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 결혼을 해야 했다는 걸. 실망한 애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화재 경보기를 누른다. 제레미는 핸드폰과 리모컨, 페이스북에 올릴 사진이 담긴 카메라를 챙기는 것도 모자라 애나에게 귀중품을 챙기라 말한다.
애나는 딩글로 향하고 그렇게 데클런의 곁을 택한다. 60초가 다가왔을 때 정작 소중한 게 자신에게 없었다고,
자신에게 소중한 건 이곳에 있었다고 프러포즈한다. “우리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요.”라며 . 데클런은 대답 없이 사라지고 거절당했다 생각한 애나는 도망친다. 그리고 애나가 있는 곳으로 데클린이 다가온다. 어머니의 반지를 가지고.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지만 지금까지도 한 장면 한 장면에 머릿속에 지나갈 정도로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내 마음 속 로맨스물 중 10위 안에 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애나와 데클런처럼 운명 같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나는 영화처럼 운명 같은 첫 만남을 한 사람과 살고는 있지 않지만(^^) 평행 세계란 게 정말 있다면 그 세계 중 하나에서는 애나와 데클런처럼 운명 같은 사랑을 하고 있기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