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의 경계
#1. 프롤로그
이 영화를 본 가장 큰 이유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난 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영화에서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셔터 아일랜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일단 평점부터 주고 시작하자. 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난 후 내 나름대로의 평점을 준다. 물론 영화의 감독이나 소설의 작가는 내가 내린 평점 따위에 관심이 없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내가 내린 평점은 별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 만점이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포털사이트에 먼저 검색을 한 후, 평점을 보는 습관이 있다. 만약 평점이 7점 이하라면 보려다가도 김이 빠져서 안 보게 된다. 이렇게 타인이 내린 영화 평점에 따라 영화의 선택이 달라지는 이유는 타인의 안목을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뭐 그런 걸 맹신하냐!"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포털사이트의 평점은 어느 정도 믿을 만하다. 나에게 있어서는 뭐 그렇다. 간혹 평점이 굉장히 높아 기대하고 봤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이라는 책이다.
흔히 소설 원작 영화의 경우 호평보다는 혹평을 받아왔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원작을 잘 살렸다.', '원작을 완전 망쳐놓았다.' 는 등의 이야기를 할 자격이 없다. 원작을 미리 읽은 사람들의 입을 빌릴 수밖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원작을 훌륭히 표현해 낸 영화라고.
#2. 셔터 아일랜드로의 초대
이 영화는 배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곳에서 뱃멀미를 심하게 하고 있는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난다.
테디는 연방 보안관으로 파트너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살인자들의 섬'이라 불리는 셔터 아일랜드로 향한다. 테디와 척은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말이다.
이들의 목적지인 셔터 아일랜드는 살인자들 중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이들의 임무는 셔터 아일랜드에서 실종된 환자, 레이첼을 찾는 것!
사진 속 레이첼의 눈빛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숨기고 있어!' 아마도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테디는 꽤 능력 있는 보안관 같았다. 그는 배멀미를 하긴 했지만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척 역시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이 두 사람이 함께라면 레이첼을 찾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배에서 내린 테디와 척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교도소의 부소장이었다. 이상하게도 부소장과 그의 부하들은 테디와 척에게 총을 겨누는 등 경계하고, 그들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테디는 그런 그들에게 기분 나쁜 표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나 역시 테디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셔터 아일랜드는 기분 나쁜 곳임이 분명했다.
교도소 부소장의 안내로 테디와 척은 셔터 아일랜드의 교도소에 발을 들여 놓는다. 나 역시 이들에게 이끌려 교도소로 향한다. 이들이 교도소에 들어가기 직전, 부소장은 총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며 테디와 척의 총을 빼앗는다. 이 때 척은 보안관이라 하기에는 다소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이 복선이었다는 것을 영화가 다 끝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복선을 교묘하게 숨겨 놓았다. 웬만한 반전 영화의 반전은 영화 중반 정도만 가면 알아맞혔었는데, 이 영화의 큰 반전은 맞히지 못했다. 사실 작은 반전 하나는 영화가 시작되고 2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찾아냈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반전이라 함은 '척'에 관련된 것이다.
테디는 셔터 아일랜드에 수감중인 사람들을 살인자라고 지칭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환자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특히 수감된 사람들의 정신병을 치료하고 있는 의사 존 코리(벤 킹슬리)는 수감자들을 살인자라고 부르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이 영화에서 테디와 대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코리 박사이다.
코리 박사. 겉으로는 수감된 환자들에게 정성을 쏟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 믿음이 안 가는 인물이다.
어쨌든 테디와 척은 실종된 레이첼을 찾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아니, 테디 혼자 총력을 다 한다고 해 두자. 척은 별로 찾고 싶은 의지가 없어 보였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계속해서 테디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때부터 내가 척을 의심했던 것 같다.
#3. 레이첼의 메모
테디는 레이첼의 방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발견한다. 레이첼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이 메모.
'4의 규칙. 67은 누구인가?' 대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메모에 대한 의문은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히 풀리게 된다. 이 메모가 이 영화의 열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모를 발견한 후 테디는 바깥을 수색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테디는 열심히 수색을 하는데 교도소 사람들은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영 의심스럽다.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 물수제비를 뜨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이 사람의 상관이었으면 당장 해고했을 것이다.
테디는 이 날 밤, 죽은 아내를 꿈에서 만난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정도로 생생하다. 슬픈 눈빛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던 테디와 아내. 테디는 아내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지만 아내는 자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테디가 그녀를 끌어안자 갑자기 그녀의 배에서 피가 솟고, 결국 그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린다. 테디는 계속해서 아내의 환영을 보는데 아내는 꿈속에서 사건에 대한 단서를 준다.
꿈에서 깨어난 테디는 본격적으로 교도소 사람들을 심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을 도끼로 찍어 살해한 여자를 심문하던 도중 여자는 척 몰래 테디에게 'RUN' 이라는 글자를 써서 건넨다.
여자는 왜 테디에게 도망치라고 했을까? 나는 이 장면을 보고 테디가 위험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당장 테디가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테디는 수사 끝에 레이첼이 쪽지에 남긴 글자의 의미를 알게 된다. 테디의 추리에 의하면 C병동에 있는 환자는 24명, 나머지 병동의 환자는 42명이기에 다 합하면 66명이다. 그러므로 '67은 누구인가?'에서 67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셔터 아일랜드에 수감된 67번째 환자이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는 67번째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다.
테디가 코리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코리는 셔터 아일랜드에 있는 환자는 모두 66명이라고 주장하며 뜬금없이 레이첼을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못 찾던 여자를 어디 가서 찾았단 말인가? 어쨌든 그들은 정말로 레이첼을 찾았고, 테디는 직접 레이첼을 만나 본다.
레이첼은 자신의 아이 셋을 강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뒤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남편과 아이들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었다.
레이첼을 찾았으니 테디와 척이 더 이상 이 곳에 머물 이유는 없다. 갑작스런 두통으로 쓰러지는 테디. 그는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테디는 꿈에서 레이첼의 살인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한다.
#4. 드러나는 진실
잠에서 깨어난 테디는 C병동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목적은 '레이디스'를 찾는 것. 레이디스는 테디의 아내를 죽인 범인이다. 테디는 그를 잡아 복수하고자 한다. 그러나 레이디스는 찾지 못하고 험악하기로 소문난 '조지'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조지는 테디 때문에 이 곳에 갇히게 된 것이라며 테디를 원망하고, 테디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조지를 꺼내주겠다고 한다. 그런 테디에게 조지는 '그 여자'를 잊으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그 여자란 바로 테디의 아내이다. 이 장면은 참 아리송했다. 조지는 왜 테디를 원망하는 것이며, 테디는 어째서 조지를 꺼내주겠다고 하는 건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온 테디는 척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혼자서 등대로 향한다. 등대에서 수감자들의 뇌를 열어 실험을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곳에 레이디스가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그러던 중 척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고 척이 위험에 처했음을 직감한다. 등대에 기야 할 목적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굴에서 진짜 레이첼을 마주하게 된다. 테디가 교도소에서 본 레이첼은 진짜 레이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코리 나쁜놈!'을 외쳤다. 테디가 하루빨리 이 섬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교도소로 돌아오게 된 테디는 코리의 차에 불을 냄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킨 뒤, 등대로 향한다. 코리의 차가 타면서 아내의 환영, 레이첼 딸의 환영도 함께 타게 된다.
어딘지 모르게 무서워 보였던 테디의 아내. 보는 동안 뭔가 애틋한 게 아니라 좀 그랬다. 무서웠다는 표현이 제일 맞겠다.
등대에 도착한 테디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반전은 근래에 본 영화 중에 단 한 편도 없었다. 드디어 풀리게 되는 4의 규칙. 이 소설의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더불어 현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테디가 가여워졌다. 그렇다면 4의 규칙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4의 규칙에서 '4'가 의미하는 것은 4명의 이름인 듯하다.
코리 박사가 적어 놓은 알파벳을 잘 들여다보자.
EDWARD DANIELS - ANDREW LAEDDIS
RACHEL SOLANDO - DOLORES CHANAL
대체 이게 무엇일까? 이 이름들은 아무런 규칙 없이 써 있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규칙을 찾을 수 있다. 테디와 레이디스, 레이첼과 테디의 아내의 이름은 그 조합은 다르지만 알파벳이 동일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레이디스와 레이첼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을 외면하고자 했던 테디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결국 테디가 레이디스, 레이첼이 테디의 아내였던 것이다. 테디는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현실과 환상,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것이다.
#5. 에필로그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서 고민하는 테디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인훈의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떠올랐다. 그는 광장은 없고 밀실만 있는 남한, 그리고 밀실은 없고 광장만 있는 북한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죽음을 택한다. 그 어디에도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없던 것이다. 나는 테디 역시 이명준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했다. 다행히도 테디는 죽음을 택하지는 않았다. 현실을 택하는 것 같았던 테디는 결국 환상의 세계로 발길을 돌린다. 영화의 막바지에 그는 척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다.
Which would be worse…
to live as a monster or to die as a good man?
과연 무엇이 더 나쁜 선택일까? 테디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일까? 그 대답은 테디만이 할 수 있다. 나는 테디의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테디와 같은 무서운 일을 겪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런 일을 겪게 될까봐 두려워서도 아니다. 아마도 나 역시 테디와 같이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인생은 수많은 선택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우리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이란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 어딘가에 걸쳐 있는 건 아닐까?
아주 오래 전, 약 15년 전에 써 놓았던 영화 감상 후기를 우연히 폴더에서 발견하고 올린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