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린 결론을 무르기 힘들다
‘어릴 때 내린 결론은 무르기 힘들다’는 영화 대사가 있다. 한때는 거기서 말한 ‘어릴 때’란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 어엿한 청년이 된 지도 꽤 되었음에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나의 현실을 보니, ‘어릴 때’라는 건 어린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무언가를 다 알았다고 생각했을 때 ‘진리’처럼 서둘러 판단하고 확신하는 모든 시기를 말하는 것이겠다.
어린 시절의 나는 평생 외할아버지와는 친해질 수 없다고 믿었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춘천 생활을 정리하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있는 서울로 온 지 얼마 안 된 내게 따뜻하고 포근했던 외할머니와 다르게 외할아버지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호랑이처럼 무서운 존재였다. 음식 간이 조금이라도 짜면 안 됐고, 피자 햄버거도 먹기 힘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내 생일날, 친구들과 편히 햄버거 세트를 먹을 수 있도록 비밀리에 롯데리아에서 생일파티를 열었는가 하면, 외할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틈에 외할머니와 몰래 즐기는 해물 쟁반 짜장면의 환상적인 짜릿한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다 외할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일기를 쓰거나 숙제를 했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러갔고, 그와 나 사이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에 숨이 턱턱 막힐 때도 있었다. 그렇게 외할아버지와는 평생 친해질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은 내가 스물셋이 될 무렵부터 조금씩 붕괴되었다.
"네가 크니까 이런 말도 한다"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옛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연애, 외할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대에 경험했던 젊은 날의 일화들. 내가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흐르는 시간만큼 외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추억도 늘어갔다.
함께 안양천과 보라매공원을 걷고, 관악산과 호암산을 오르며 나눈 대화들, 긴 세월 사이클로 다져진 외할아버지의 체력과 운동신경에 감탄하며 동네에 설치된 운동기구에서 함께 스트레칭하는 것, 외할아버지 집에서 두툼한 솜이불 안으로 들어가 같이 드라마를 보는 것, 전자레인지를 잘 안 쓰는 외할아버지의 생활습관에 맞춰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마다 콘센트를 꽂고 뽑아내기를 반복하는 것, 외할아버지가 화단에 심은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 반듯하고 동그랗게 잘 정리된 사철나무를 자랑하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나무 앞에 서서 잔가지를 쳐내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 집에 가려고 하면 내가 사라질 때까지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외할아버지를 보는 것, 종종 보내 주시는 메시지 속 오타와 마침표나 따옴표들을 보며 천천히 메시지를 입력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 크고 작은 순간 하나하나에 녹진한 추억이 짙게 물들었다. 이 모든 걸 나누고 느끼고 있었다.
스물여덟에서야 우리 관계의 진실을 깨달았다. 외할아버지와 친해질 수 없다는 어린 날의 확신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자라고, 외할아버지에게도 찾아올 변화의 가능성을 단 1%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그 확신이 깨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이 있다면 내 편견과 고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