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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율 Nov 14. 2024

길치와 고양이를 이해하는 것은 체념하십시오

길치 인 이탈리아





 


싫어하던 것도 여행 중에는 용기 내서 시도해 보자. 의외로 취향 일지도 몰라.









3-1화 : 녹색의 그것은 맛있는 것이었어.




어딜 봐도 폐가와 거대한 공터뿐인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어디 있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이는 건물 쪽으로 한번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찾는 숙소가 아니더라도 숙소에 대해 물어보기라도 할 셈으로.


앗, 그런데 건물로 가까이 다가갔더니 ostello라고 쓰여있다. 여기가 우리가 찾던 호스텔이구나!





접수처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아쉽게도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바디랭귀지가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지. 













수건도 샴푸도 미리 가져왔기 때문에 숙박비 3일 치인 40유로 외의 추가금액은 내지 않아도 되었다. 열쇠와 사물함 자물쇠 용으로 5유로의 보증금만 냈는데, 퇴실 시 되돌려 준다고 했다.  



자, 이제 방으로 가볼까. 




(시설은 크게 나쁜 곳이 없었다. 방도 여럿이 써도 괜찮을 만큼 사이즈가 넉넉했다.  /현재는 휴업 중인 듯)





(지킬 수 없는 약속)




 그렇게 몇 시간을 기절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저녁 7시 30분. 아직 피곤했지만 새벽부터 먹은 것이 없어 두통까지 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서둘러 일어났다. 







숙소를 나갔더니 이미 해가 져 있다. 저녁 하늘은 높고 맑은 청색이었고, 선선한 바람과 섞인 공기는 상쾌한 풀 냄새가 나서 곧 다가올 여름을 느끼게 했다. 


“공기에서 초 여름의 수박 같은 향이 나.”


“수박…?” 


“하늘도 툇마루에 앉아 수박 먹기 딱 좋은 톤이네.”


“응?" 


“뭔가, 그런 거 생각난다.  여름에 하루 종일 더운 곳에서 고생하다가, 시원하게 촥 목욕하고 나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선풍기 앞에 앉는 거야. 그리고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온 아주 차갑고 수분이 아주 가득하고 아삭한 수박을 제일 단 중앙부터 크으게 한입 와삭!하고 베어 물면, 달고 상쾌한 과즙이 입안 가득…”








한참  그렇게 동행인의 위장을 본의아니게 고문하며 동네를 탐방했지만 몇 없는 상점들도 모두 닫고 버스도 끊겨서 저녁을 먹을 방도가 없었다. 


괜찮아, 밥이 없으면 대신 과자를 먹으면 되는 거지. 오늘 저녁은 숙소의 자판기를 털어보자!





숙소에 있는 과자 자판기에서 칼로리가 높아 보이고 배가 조금이라도 부를만해 보이는 것을 뽑아서 식당으로 갔다. (방에서는 취식 금지) 





그런데 이게 웬 행운! 누군가 버리고 간 피자 팸플릿이 테이블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배달이라는 수가 있었지!  신나서 팸플릿을 살펴보았지만 무슨 말이 쓰여있는지 읽을 수 없고, 이탈리아의 피자 사이즈에 대한 감도 없어서 일단 리셉션의 아주머니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아까 잘 통했던 바디랭귀지로 설명하면 바로 이해하시겠지. 







어쩌다보니 주문이 되었고, 어째서인지 피자가 2판이나 와서 당황했지만 일단 값을 치르고 먹기 시작했다. 익숙한 페페로니 피자와 정체 모를 토핑이 올라간 커다란 피자였다. 






그런데 세상에, 너무 맛있어! 



정체 모를 피자에는 할라피뇨인지 피망인지 모를 도톰한 구운 녹색 채소가 올라가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구운 가지처럼 부드럽게 녹으면서, 달콤하고 동시에 살짝 매콤한 뒷맛이 아래 깔린 고소하고 쫄깃한 치즈와 어우러져 너무 맛있었다!  


이 피자의 이름을 알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식사를 마치고 나갔을 때는 아주머니께서 자리를 비우셔서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을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다 먹어서 피자가 없어진 것도 아쉬웠다. 여행 중에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어 너무 좋지만, 다시 먹을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그런 점은 참 슬퍼.  

복사&저장이 가능한 무한용량의 마법 냉장고 같은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발견한 맛난 것들을 저장해 놓고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1000살이 안 넘어서 아직 마법을 쓸 수 없으니 그냥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기 위해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수 밖에 없겠지. 






피자를 맛있게 먹고 방으로 돌아갔더니 숙박객이 하나 늘어 있다.


4인실 가격을 냈는데 5인이 묵게 된 것,

새로 온 사람이 내 짐을 마음대로 치우고 내 침대를 차지했다는 것,

그리고 태연하게 하이~라고 인사하는 모습에 잠시 화가 나긴 했지만 용서하고 비어있는 다른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인생 피자를 배불리 먹고 바로 누워 잘 수 있는 이 만족스러운 시간을 분노로 낭비할 순 없어. 여행 왔을 때가 아니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언제 이런 방탕한 생활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느냔 말이야. 












3-2화 : 길치와 고양이를 이해하는 것은 체념하십시오.




눈만 감았다 떴는데 어느새 볼로냐에서의 둘쨋날이다.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같은 것은 없었지만 아침은 나름 종류가 풍성했는데, 탄산수, 우유, 요플레와 시리얼, Fette biscottate, 에너지 바 그리고 각종 잼과 버터가 있었고 그 외에는 유료로 제공되는  커피와 물이 있었다.



* Fette biscottate :바삭하게 두 번 구워진 빵. 이탈리아에서는 아침이나 가벼운 스낵으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 







짧은 해프닝이 있었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서늘했던 어제와는 달리, 높은 하늘에 햇볕은 뜨거운, 초여름 날씨가 되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것 같은 오늘은 우리가 볼로냐에 온 이유인,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 )을 보러 가는 날이다.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은 1963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세계적인 축제로, 전 세계에서 보내진 새로운 동화책들과 일러스트레이션 원화를 관람 및 구입할 수 있으며, 작가 지망생들은 여러 나라에서 온 출판사들과 포트폴리오 미팅을 할 수 있다. 즉,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사람에게는 온갖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한 놀이동산 같은 행사이면서, 잘하면 취직까지 할 수 있는 꿈 같은 축제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행사장은 우리 숙소에서 버스 한번에 가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잠시 후 도착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 티켓은 버스에서 살 수 있다고 들은 것과 다르게 


노 티켓! 


티켓도 팔지 않고,  


노 캐시! 


현금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방도가 없으니 일단 내렸다.


 

호스텔로 돌아가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다행히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었다) 주유소에 가서 버스 티켓을 사면 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다행히 주유소는 호스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버스 티켓이 다 팔렸다고!  그래서 별다른 소득 없이 다른 주유소에는 있을 지 모르니까 가보라고 조언만 듣고 나왔다.  


그래.. 괜찮아. 갈 수 있어. 덥고 햇빛은 따가워서 별로 걷고 싶지 않지만 그늘로 가면 숨은 쉴 수 있으니까! 슬슬 시내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다음 주유소가 나오겠지 뭐. 






그렇게 계속 행사장 방향이라고 추측되는 쪽으로 걸으며 종종 보이는 주유소를 들어가서 확인하고,



"아니, 왜 다 셀프 주유소인 거야..!"

"주유소에도 거리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물어 볼 수도 없잖아..!"



고속도로같이 인도가 없는 곳을 거쳐, 



"이 앞으로는 더 이상 발을 디딜 곳이 없어! "

"건너편은 그나마 난간 쪽으로 붙으면 좀 나을 것 같아!" 

"언니! 지금이야, 건너자!! "  

"(죽을 힘을 다해 뛰며) 이 여행 너무 다이내믹하다!!" 



한참 동안 차가 안 오는 타이밍을 보아 안전히 건넜습니다. 


어딘가 동글동글한 길을 돌아가다가,

(길치들의 길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낮은 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

 



이동 거리를 총 4km를 돌파하고 더 이상은 무리다, 우리 아무래도 조난당한 거 같으니 히치하이크를 시도해 보자라는 의견이 나올 쯤에 어느 주택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겨우 사람을 발견했다. 세명의 착한 학생들이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그림과 바디랭귀지로 뜻이 통해, 다행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 곧이어 도착한 버스에 뒷문으로 탑승하니, 빨간색 매표기가 있었다. 만세! 


그런데 어째서인지 사람들이 표를 안 사고 그냥 타고 아무도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잠깐 당황했는데, 웅지가 이탈리아 토막 상식을 기억해 냈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에서는 표 검사를 안 한대. 대신 걸리면 벌금이 어마어마하다더라."

"뭐? 그럼 사야지!" 




그리고 3화의 우당탕탕 에피소드 마무리로 쓰기 딱 완벽하게도 매표기는 아주 맛있게 우리의 잔돈을 먹었습니다. 




됐어.. 영수증은 나왔으니까 어쩌면 물 수도 있는 벌금은 피한 거잖아..




(계속) 




* 나중에 조사해 보니 이렇게 받은 영수증으로 일정 시간 동안 무제한 탑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시스템에다 앞 뒤로 탑승이 가능하다 보니 버스 기사가 일일이 티켓과 시간을 확인할 수 없어서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불시 검문이 자주 있기 때문에 걸리면 벌금이 어마어마해서 웬만하면 다들 표를 산다고. (혹은 정기권). 현재는 무제한 티켓, 정기권 외에 교통카드도 사용 가능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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