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혹은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버린 이야기. 그 어른이 된 소년이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그때의 소년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그래서 영영 어른의 세계로 되돌아오지 않는 이야기.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이어폰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A Great Big Word(이하 AGBW)’의 <When I was a boy>. 요즘 자주 듣게 되는 곡이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울컥 눈물이 나왔었다. 슬픈 노래가 아니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로 시작되는 이 노래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나를 멀리 데리고 갔다. 가슴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의 파동이 닫혀있던 문 하나를 열어버린 기분이랄까. 그 문 안쪽 귀퉁이에 한 아이가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소년, 아니 소녀.
저기, 나에게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기억이 나질 않아…
AGBW의 노래 속 소년은 꿈이 있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머릿속에서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고, 밤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타를 쳤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있었지만, 따분한 직업 따윈 갖고 싶지 않았다. 그저 소년은 ‘너, 나 사랑해?’라며 노래하고 싶었다.
천재도 아니고, 어떻게 침대에 눕자마자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올 수 있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타를 쳤다고? 누구는 제대로 하는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데. 따분한 직업 따위 갖고 싶지 않다고? 네가 어려서 아직 세상을 모르는구나, 거만한 자식. 아무래도 나, 소년에게 화가 났던 모양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소년이 부러웠다.
소년이 나오는 노래 중에, 좋아하는 곡이 하나 더 있다. ‘몽니’의 <소년이 어른이 되어>.
소년이 어른이 되어 사람을 알아갈 때에
뜻하지 않던 많은 요구와 거친 입술들
소년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아갈 때에
하얀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겠지.
나의 오늘이 흘러가면 서글픈 추억들 중에 작은 조각이 되겠지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은 떨어지는 빗방울이 사라지듯 나를 스쳐가네.
……
나의 내일이 다가오면 소년의 꿈을 이뤄줄 작은 노래가 돼줄게.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은 오늘도 미련 없이 나를 남겨두고 떠나가네.
그랬다. 나의 소녀는 몽니의 노래 속 소년처럼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아가면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 처럼. 왜 이유 없이 삶이 서글퍼지곤 했는지, 새벽이 밝아오도록 멍하니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은 다시 소년 혹은 소녀로 돌아가는 일이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계의 초침을 감히 멈추어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다. 한때 나는 글을 쓰는 일을 꽤나 거창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글을 쓰는 행위가 흙장난을 치거나 그네를 타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은 아니란 것을.
어른이 되어버린 소녀는 이제 글을 쓴다. 잊어버렸던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그때의 소녀로 돌아간다. 다시 소녀가 되었지만 침대에 눕자마자 머릿속에서 문장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역시 AGBW의 노래 속 소년은 천재임이 틀림없어.
어쨌거나, 소녀는 지금, 그네를 타듯 글을 쓰고 있다.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