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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쓸 수 없다.

by 조혜영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다. 커다란 가방엔 노트북이 담겨 있다. 결혼식이 끝난 주말 오후, 약속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조용히 글을 쓰기로 한다. 글을 쓰지 않아도 세상에 할 일은 많다. 영화를 봐도 좋고, 친구를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어도 좋겠지. 간만에 밀린 수다도 떨고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지냈다. 글을 쓰는 일만 아니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듯이. 지인의 결혼식에 가면서 굳이 무거운 노트북을 가방에 넣는 일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은 좋아했지만 혼자서 글을 쓰는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서 글을 쓰는 일이 마치 오아시스도 없는 끝없는 사막으로 유배를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롯이 나를 마주해야 한다는 외로움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이었을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변화된 것이 있다면, 글쓰기가 두렵지 않고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크리스틴 돔벡의 『자기애적 사회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다.


철학자 칸트가 명쾌하게 제시한, 올바로 행동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올바로 행동하려면 행동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세상이 더 나아질까?


질문을 던져본다. 모두가 혼자서 글을 쓴다면 세상이 더 나아질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모두가 혼자서 글을 쓴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혼자서 쓰는 것이 아니니까. 모두가 ‘함께’ 혼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까.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잖아. 마치 글쓰기의 연대라고 할까. 같은 날, 같은 시간을 정해 모두가 혼자서 글을 쓰고 있다면 그 시간만큼은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일거야.




나는 글을 쓴다.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나’는 ‘나 아닌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고로 나 아닌 모든 것들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외롭지 않다. 두렵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 한 명쯤은 글을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힘이 난다.

어쨌거나, 혼자서는 쓸 수 없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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