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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백지 위로 불러오는 일

by 조혜영


한 달 전쯤 꽃집에 들렀다가 잉글리시 라벤더와 핑크 안개꽃 화분을 샀다. 색이 바랜 듯한 초록의 잎 사이로 연보라의 라벤더 꽃이 나를 사로잡았다. 분홍색 물감을 콕콕 찍어놓은 것 같은 안개꽃은 또 어떻고. 꽃다발도 좋지만 화분을 사는 일은 건조한 일상에 생기를 준다.

문제는 그 생기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꽃의 책임도, 화분의 책임도 아니다.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라벤더와 안개꽃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집 베란다에서 안타깝게 시들어가고 있다. 메말라가고 있다. 방치한 것은 절대 아니다.


화분을 집으로 데려오면서 예쁜 꽃집 언니에게 물었었다.

“물은 며칠에 한 번씩 줘야 해요?”

“이 녀석들은 물을 많이 먹어요. 거의 매일 주셔야 해요.”

그 언니는 ‘매일’이 아니라 ‘거의 매일’이라고 말했고 나는 ‘거의 매일’ 화분에 물을 주었다, 고 기억한다.


늘 그랬다. 제때 물을 주고 영양제까지 놓아주어도 꽃들은 시들어갔다. 베란다 한 귀퉁이에는 한때 생기를 품었으나 이제는 폐허가 돼버린 낡은 화분들이 목적을 잃은 채 놓여있다. 마치 꽃들의 무덤, 화분들의 무덤처럼.


오늘 아침, 베란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 안의 잔인성과 마주한 것이다. 시들어가는 꽃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어쩔 수 없어. 저렇게 시들어가다 결국은 죽고 말겠지. 흙이랑 화분을 또 버려야겠군.’


처음의 생기를 잃었을 뿐 화분 속 꽃은 여전히 자신의 색을 띠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려볼 생각은 하지 않고 죽기도 전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던 거다. 그런 식으로 화분의 꽃들에게 살인을 저질러 왔음을 자각했다. 순간 예쁜 꽃집 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이 녀석들은 물을 많이 먹어요…”

꽃집 언니는 화분들을 ‘이 녀석들’이라고 불렀었지. 나는 뭐라고 불렀더라.

떠올려보건대, 나는 그들을 부른 적이 없다. 뭐라고 지칭하거나 호명한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내게 아름다운 색과 형태를 보여주는, 그럼으로써 나를 즐겁게 해주는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 색과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지 않았다. 이따금씩 물을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 몫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선물한 화분을 10년째 잘 키우고 있는 그는 요리를 참 잘한다. 그 비결을 물으니 무심하게 답한다.

비결 같은 건 없어. 불 앞에 그냥 계속 서 있을 뿐이야.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비결은 관심과 사랑,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마음 같은 거라는 걸.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만난 세계를 백지 위로 불러오는 일이다. 우연히 들렀던 꽃집의 화분을 베란다로 데리고 오듯이.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불러오고 데리고 오는 일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목에 줄을 매어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은 나의 베란다로 불러온 '그 녀석들'에게 물 대신 마음을 줘야겠다.

다행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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