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블라인드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만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까, 아니면 다시 눈을 붙일까. 일어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부지런을 떨어야 할 만큼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다. 눈을 감고 좀 더 잠을 청하려다 몸을 일으킨다. 이미 잘 만큼 자버린 몸은 더 이상 잠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침대에서 빠져나와 무언가를 하고 싶지도 않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날이다.
이런 날은 그냥, 침대에서 글을 써보면 어떨까. 눈곱도 떼지 말고, 입가엔 밤새 흘린 침 자국이 그대로 묻어있는 채로. 부드러운 담요로 몸을 감싸고 폭신한 매트리스 위에 비스듬히 누워 노트의 아무 면이나 펼치는 거다. 필기감이 좋은 펜 하나를 손에 쥐고, 그럴싸한 생각도 하지 말고, 종이 위에 아무 단어나 끼적여 보는 거다.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하나의 완결된 글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시작도 하지 말고, 마무리도 하지 말자.
누구나 조금씩은 그렇겠지만, 집에 있을 때의 ‘나’와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는 사뭇 다르다. 집에 있을 때가 좀 더 자유인에 가깝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는 그대로 편안하고 싶지만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쉽지가 않다. 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면, 늘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엄지발가락 아래 모드 전환 버튼이 있어, 자유인 모드에서 사회인 모드로 꾹 버튼을 눌러줘야 하는 것처럼.
글을 쓸 때도 나도 모르게 모드 전환을 할 때가 있다. 무명씨(無名氏)에서 갑자기 작가(作家)가 되려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작가로의 모드 전환은 디지털이 아니어서 버퍼링이 오래 걸린다. 일단 머리를 질끈 묶고, 책상 정리를 한다. 책상 위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모니터 화면도 깨끗이 닦는다. 그리고 나선 손톱을 깎는다. 손톱이 길면 자판을 두드리기가 힘드니까. 손톱을 깎았으니 청소기를 한번 돌려야지, 새끼손톱이 테이블 밑으로 튀었을지도 모르잖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사놓고 못 읽었던 책부터 읽어볼까… 버퍼링은 끝날 줄을 모른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한 이유는 '다른 나'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못난 나'에서 '폼 나고 번듯한 나'로 모드 전환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숨을 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집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다르지 않다. 못났든 잘났든 똑같다. 한 번의 숨을 내쉬고, 한 번의 숨을 들이마신다. 잘났다고 해서 두 번의 숨을 내쉬었다 두 번의 숨을 들이마시진 않는다. 숨을 쉬는 데는 모드 전환이 필요 없다는 얘기다. 숨을 쉬듯이 글을 쓰고 싶다. 그냥 한 번에 한 호흡씩, 편안하고 자유롭게.
침대에서의 글쓰기는 내게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쉽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을 필요가 없다. 작가로의 모드 전환도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느끼는 그대로'의 무언가를 쓸 뿐이다. 그러다 다시 잠이 오면 스르르 눈을 감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쨌거나, 일요일이다.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각, 나는 아직 침대 위에 있다.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