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이 오기 1년 전

by 민콰이엉

우리 모두 적응하느라 바빴던 2024년 봄이었다. 2024년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는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남편도 1년간의 육아 휴직을 마치고 학교에 복귀했다.


8살, 3살과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아무 일이 없어도 정신이 없었다. 아직 1학년이라 혼자 왔다 갔다 할 수 없는 첫째 때문에 둘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유모차에 실려 다녔다. 첫째는 동생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 엄마 때문에 스스로 옷 입고 양치하는 법을 터득했다.


정신없이 바쁠 때는 꼭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생긴다. 고깃국을 태워서 집이 고기 태운 냄새로 연기로 가득해 그 추운 3월, 3일 동안 환기를 시켰고, 잠시 둘째에게 눈을 뗀 사이 엄마의 핸드폰 메인보드를 분리해서 핸드폰을 다시 사야 했던 시트콤 같은 일도 있었다. 어린이집을 처음 간 둘째는 왜 그렇게 자주 아픈지 등원한 날이 많은지 가정보육하는 날이 많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신없이 등교와 등원 준비를 해서 두 아이를 보내고 난 후, 잠시 동안 오른쪽 시야의 일부가 가려졌다. 오른 시야의 약 삼분의 일이 회색 커튼이 쳐진 것처럼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다리에 쥐가 났다가 점차 풀리는 것처럼 회색커튼은 점차 없어졌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당혹스러웠지만 하루하루가 바쁘다 보니 곧 잊혔다.


그러나 그 후로도 잊을 만하면 시야구름 현상(나는 이 현상을 시야 구름 현상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이 찾아왔다. 회색 구름이 가리는 시야의 범위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10분 이내에는 항상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고 인터넷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 증상이라 혼란스러웠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일과성 허혈 발작'이라고 하는, 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 뚫리는 현상이 아닐까 추측된다. 나의 뇌가 보내는 마지막 경고등이었다.


그해 여름에는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고 가끔씩 어지러웠다. 여름이 끝날 무렵 신경과를 찾아갔다. 여러 검사를 했지만 모두 정상이었고 맥박만 좀 높았다. 전형적이지 않은 증상에 신경과 의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큰 문제 아닐 거라며 혈액순환제를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고, 여름이 지나가면서 증상은 점차 좋아졌기에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가끔씩 밤을 새우는 날이 생겼다. 침대에 누워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보통은 그러다가도 한두 시간 후면 잠들기 마련인데, 시계가 1시, 2시, 3시... 7시가 될 때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생전 처음 해 본 침대 위 밤샘이었다. 안 그래도 둘째가 아직 자주 깨던 시기라 수면이 부족했는데 둘째가 깨지 않았을 때도 나는 자지 못했다. 그런 날들이 많아졌다. 그맘때 혈액검사를 했는데 혈소판 수치와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다. 다행히 한 달 뒤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는 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아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을 권했다.


마흔에 고지혈증 약은 아니다 싶어서 생활 습관을 교정해 보기로 했다. '그래, 이 모든 문제는 수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고 잘 자면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 나는 스스로를 진단하고 잘 자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잘 자야겠다!'라는 결심을 한 날부터 본격적인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한 3일 정도는 잘 자다가 하루는 밤을 꼴딱 새우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잘 자야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잘 수가 없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는데도 여전히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자지 못한 채 아이들도 돌보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일상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잠도 못 자고 건강 이상 증상도 있다면 내 몸을 돌보는 게 먼저일 텐데 그때는 내가 일상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해서 몸이 안 좋아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함을 잊기 위해서는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바쁘고 더 많은 스트레스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나는 내가 내 몸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니 밤이 오는 게 무서워졌다. 집에 불을 끄고 어둑해진 거실을 보면 자야 된다는 공포감이 들었고 어떤 날은 저녁 식사 시간부터 밤을 걱정하기도 했다. 낮의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마치 나는 영화관 맨 뒷자리에 앉아있고 무기력하게 현실의 스크린을 보는 느낌이었다. 현실에 있지만 아무 데도 속해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때의 하루 패턴은 보통 이런 식이 었다. 아침에는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몸 상태에 의아해하며 등원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 요가도 다녀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하거나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난다. 짜증은 대부분 눌려있다가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화로 표현되기도 하고 혼자 엉엉 울면서 풀기도 한다. 피곤과 짜증이 지나간 자리에는 자괴감과 불안이 남는다. 불편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내버려 두면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은 쌓인다. 그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밤의 개수도 많아졌다. 무기력하면서도 감정에 사정없이 휘둘리는 이상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밤을 새운 어느 날 이번에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그날도 감정이 널뛰기를 해서 그런지 울면서 상담을 끝내고 수면유도제를 받아왔다. 수면 유도제를 먹으면 밤을 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푹 자지는 못했다. 3-4시까지 버티다가 잠을 자는 날이 많아졌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불안이 내 불면의 원인이라고 하셨다. 상담을 통해 비로소 내 불안의 오래된 뿌리가 엄마와 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의 숙면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아침에 햇빛 보며 산책하기, 헬스장 가서 러닝 하기, 식사에 탄수화물 줄이기, 자기 전 불안 일기 쓰기. 잠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잘 자는 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 사이 다시 여름이 왔다. 땀이 여전히 많이 흘렀다. 등하원을 시키고 돌아오거나, 잠시 밖에 나갔다 오면 온몸이 땀이 흥건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오기 바로 전 주, 그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