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뒤척이다 오른쪽 손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손이 바닥으로 툭 힘 없이 떨어지는데 전에 느낀 적 없는 생소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친정 엄마와 차 한 잔 마시고 치과에 다녀왔다.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으로 걸음이 쏠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잘못 자서 근육이 눌렸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시 누워 쉬었다. 점심은 잘 안 먹혀서 조금만 먹었다.
첫째를 데리러 가는데 여전히 오른쪽으로 쏠려서 걷는 나 자신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근처에 있는 벤치에 주저앉다시피 했다. 그때는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 가야 했다. 학교 후문에서 기다리던 첫째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차분했다. 마치 내 마음이 당황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첫째는 다행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엇갈렸던 모양이었다.
챗지피티에게 내 증상을 입력하니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며(그중에 뇌졸중도 있었다.) 바로 신경과로 가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둘째 하원을 남편에게 맡기고 동네 신경과로 향했다. 신경과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시면서도 오른쪽 팔다리에 미약하게 위약감이 있고 뇌의 문제일 수 있다며 응급실로 바로 가볼 것을 권고하셨다. 병원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피어나는 불안감을 다독이며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되뇌었다. 코르크 소재의 샌들이 비에 젖어 걸을 때마다 질퍽거렸다. 그 사이에도 점점 걷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샌들이 질퍽해져서 그런 건지 증상이 심해지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응급실에서 증상을 말씀드리고 대기실에 한참 있었다. 그 사이 CT와 MRI를 찍었다. "오빠, 별 일 아닐 거야. 얘들 좀만 보고 있어 줘." 병원에 온다는 남편에게 씩씩하게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힘이 좀 빠져서 침대에 누웠는데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누워 있는 나에게 선생님 한 분이 걱정스럽지만 차분한 표정으로 다가오셨다.
"보호자 분 어디 계세요?"
"저 혼자인데요."
"MRI에서 뇌경색 소견이 multiple로 보입니다"
선생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챗지피티가 가능성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난 뇌경색이 뭔지도 잘 몰랐다. 가족력도 없고, 무엇보다 난 이제 고작 마흔인데. 그런 생소한 질환이 올 수도 있는 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생명이 위태로운 건가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생명이 위태로운 건 아니지만 후유증 때문에 재활을 해야 한다. 후유증이 얼마나 심하게 올진 알 수 없다. 나는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질문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고 선생님께서 내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최대한 상세하고 객관적으로 답해 주시던 것만 기억이 난다.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다. 입원 수속 서류를 작성하려고 펜을 드니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고 어지러움은 점점 심해졌다. 폴대에 의지하여 휘갈기듯 글씨를 쓰고 폴대에 의지해서 절뚝절뚝 걸었다. 입원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니 참을 수 없는 울렁거림이 시작되었다.
"토 나올 것 같아요"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토했다. 그렇게 시작된 구토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얼마 먹지 않은 점심이 다 나오고 정체불명의 하얀색 액체가 나올 때까지 토했다. 토하지 않는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왜 이토록 구토를 하고 있는지 파악도 되지 않았던 그날 밤 병원 침대에 실린 채로 여러 검사를 하러 다녔다. 누워서 이동하니 천장만 계속 움직인다. 메디컬 드라마의 장면 같았다. 그때는 무섭거나 속상할 새도 없이 그저 너무 졸렸다. MRI를 찍으면서도 자고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남편이 잠시 찾아왔던 장면, 간병인 여사님의 다정한 말에 울던 장면, 침대 위에서 소변통에 누워서 쉬를 보았던 장면, 여러 장면 장면의 기억이 뒤섞인 채 아침이 되었다. 아침이 되니 나의 상태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죽을 먹어도 된다고 하였는데 어지럽고 울렁거려서 몇 숟갈 뜨지 못했다. 침대에서 내려올 수도 없고 밥조차 먹을 수 없다는 게 서러워서 울었다.
나의 증상은 오른팔과 오른 다리의 힘 빠짐과 어지러움증이었다. 좌뇌와 소뇌 두 군데 뇌경색이 왔다고 했다. 나중에 MRI사진으로 보니 좌뇌와 소뇌에 하얀색 자국으로 뇌경색의 흔적이 남았다. 나의 뇌의 일부가 손상된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담당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도시며 나의 상태를 설명해 주면 최대한 집중해서 설명을 들었지만 뇌졸중이 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때도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과 똑같이 살아선 안된다. 지금과 다르게 남은 삶을 살아야 한다.
일반 병실로 옮긴 후 엄마, 아빠, 남편이 돌아가며 3일 동안 간병인이 되어 주었다. 엄마가 너무 놀라셨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침착해서 안도했다. 60대의 엄마가 내 옆의 조그만 간병인 침대에 주무셨고 나는 엄마를 의지해 화장실과 검사를 다녀왔다. 마음 한구석이 죄책감으로 시렸다. 아빠와 있을 때는 몸도 더 편안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정신과 의사인 아빠와 내가 앓고 있었던 불면증에 대해서도 처음 이야기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착하지만 그것에 갇혀 할 말을 못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시어머니는 전화통화로 울먹이시며 좀 더 뻔뻔하게 살라고 하셨다. 마지막 날 남편이 올 때는 철 없이도 조금 설렜던 것 같다. 연인 시절 홍대에서 데이트하며 봉지 칵테일을 먹었던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추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낡고 먼지 쌓인 서랍장에서 추억의 물건을 발견한 것처럼 낯설고 반가웠다. 남편이 왔을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농담도 주고받았다.
병동에는 나 같은 중년층 환자보다는 죽음을 앞둔 노년의 어르신들이 많았다. 심지어 젊은 간병인 여사님도 70대셨다. 퇴원할 때쯤 되니 복도의 봉을 잡고 절뚝거리며 걸을 정도가 되었다. 복도를 다니면서 들여다보았던 병실의 풍경은 너무 고요하고 어두웠고 침대 위엔 표정을 잃은 어르신이 드문드문 앉아 계셨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내 인생의 끝 무렵으로 온 기분이 들었다. 여기엔 허무하리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전부다.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 이를테면 등원 준비, 걷는 길에 본 풍경, 우연히 만난 지인과 나누는 대화, 가족과의 식사, 소파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나누는 대화, 지겹고 반복되는 집안일 등. 그냥 그 순간 자체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인생에는 항상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 마음은 우리를 염려하고, 기대하고, 후회하게 한다. 항상 지금이 아닌 곳에 살았었는데 이제 보니 모든 건 '지금 이 순간'에 있었다. 퇴원하는 날 원래 이렇게 밝았던가? 싶을 정도로 햇빛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남편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고 싶어서 옆에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나는 그냥 살아 있다는 게 감사했다. 햇살이 참 밝고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