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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Nov 13. 2018

엄마의 첫사랑

코쎈 점순이의 첫사랑 

"내일 정대가 광주로 전학을 한다. 그러니까 너네 공책 한 권씩 사 와. 정대한테 주는 선물이다."
 
반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춘자의 말에 점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점순이 옆에 선 반 친구 열둘의 머리도 바람에 흔들리는 어린  나뭇잎처럼 한 방향으로 살랑거렸다. 하교 후, 점순이는 문구점에 가서 5원짜리 공책을 샀다. 아니, 500원이었던가. 다음날  공책을 모아 정대에게 선물로 줬다.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점순이의 엄마는 자꾸만 동생들을 낳았다. 중학생이 된 점순이에겐 이미 네 명의 여동생,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언니까지 합하면 팔 남매였다. 그런데도 점순이의 엄마는 아홉째를 임신했고, 점순이는 곧 나올 아홉째 동생과 엄마를 위해 병원에 머물렀다. 아홉째 동생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죽었다. 점순이는 엄마만을 위해 병원에 머물렀다. 병원으로 전화가 왔다. 정대였다.
 
"집으로 전화를 했나 봐. 긍께 집에서, 점순이는 지금 엄마 때문에 병원에 있다고. 병원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나 봐. 그래 가지고, 그때부터 인제. 연애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어."
 
점순이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정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정대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두 달 전 여름방학. 점순이는 집 마루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열린 대문 사이로 어떤 사람이 집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영산포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의  뒷모습. 무서워서 문을 딱 잠그고, 계속 숙제를 했다. 다음날, 집으로 놀러 온 영옥이가 말했다. 야 어떤 머슴아가 너네 집 대문 앞에 서 있다. 영옥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봤다. 어제 집 앞에 서 있던 영산포 중학교 아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 갔던 그 아이, 정대가 서 있었다.
 
"걔는 딱, 이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그런 애들을 좋아했어."
 
나는 안 예뻤어,라고 점순이는 생각한다. 정대가 점순이를 좋아한 건 공부를 잘했었기 때문이라고, 점순이는 생각한다. 점순이는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 시험 볼 때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다 백 점을 받거나 한두 개를 틀려 광주 명문고인 광주여고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코가 이렇게 세졌지."
 
명문 학교를 등에 진 점순이의 코는 빵빵해졌다. 숙대 국문과에 가겠다고,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대는 꿈도 못 꾸지만 숙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에 수학 과목이 없어서였다. 친구들은 교대 진학을 계획했다. 선생님은 점순이에게도 교대를 추천했다. 하지만 이미 코가 클 대로 커버린 점순이는 교대가 싫었다. 교대는 너무 쉽지 않은가. 교대라면 별 노력 없이 거의 자동으로 갈 수 있는 학교였다.
 
숙대라는 꿈을 차치하고서라도, 고등학교 생활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3반 김점순은 5반 김정희, 8반 신영숙과 온갖 데를 구경 다녔다. 가고 싶은 데라면 어디든. 2학년 때 하루는 전남대학교에 갔다. 코스모스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시발택시(1950년대에 운행되던 지프차를 개조한 택시)를 타고 전대로 가서 코스모스를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근데 물상 선생이 봐부렀어."  
 
물상 선생은 점순이와 정희, 영숙이에게 벌을 주지 않았다. 대신 '가스 마스 부대'라는 별명만 지어줬다. 이후 가스 마스 부대는 더 신나게 놀러 다녔다. 포도밭으로, 설악산으로, 영화관으로. 3학년 때 계림극장(광주 동구 동명동에 있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째보 신랑'과 딱 마주쳤다. 얼굴이 쭈글쭈글 못생겼다고 해서 '째보 신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지도교사는 물상 선생과는 달리 가스 마스 부대를 봐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신분으로 영화관에 출입하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가스마스 부대의 이름이 학교 게시판에 게시되었다. 교무실로 불려 나가 무릎을 꿇고 앉아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것도 일주일 내내. 그렇다고 영화관 간 걸 후회하진 않았다. 무릎을 꿇었어도, 이름이 적혔어도, 선생에게 혼이 났어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희, 영숙이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갔던 그때가, 점순이 인생의 황금기였다.
  
"예비고사라고. 박정희가. 10월 25일 날 본다고 딱. 선포를 했어. 10월 25일 날 본다고 선포해 놓고 그걸 한 30일. 30일 전에 공포를 했으니…."
 
빵빵했던 점순이의 코가 빵, 터져버린 건 박정희 때문이었다. 예정에 없던 시험이 갑자기 생겼으니 결과는 난장판이었다. 반에서 부급장인 애는 떨어지고 공부를 하나도 못 하는 애는 붙는 사태가 벌어졌다. 점순이도 떨어졌다. 교대 따위 안 간다고 자신 있게 선포했었는데, 예비고사에 떨어지면 본고사를 치를 자격이 안되니 교대도 못 가게 될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교대에서 다시 시험 볼 기회를 줬다. 정교사가 되는 시험은 아니었지만, 교원자격증을 딸 수 있는 시험이었다. 한데 그것도 떨어졌다. 이번에도 망할 수학 때문이었다.  
 
일련의 실패를 겪은 후, 정대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교대에 가게 되었다고, 정대가 말했다. 나는 예비고사 떨어졌다, 점순이가 말했다. 정대는 믿지 않았다. 저는 하나도 안 틀렸는데 어떻게 점순이 네가 떨어지냐고.
 
"지가. 한 번 안아볼라고. 나를 안아볼라고. 생각했는데 못 안았대. …. 결혼한다고 그래서. 남방인가 뭔가 사 가지고. 영숙이한테. 결혼식 날 갖다 주라고 시켰어."
 
정대는 왜 점순이를 두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을까. 안아보려고 생각만 하고 왜 다른 사람 품에 안겨버렸을까.
 
"내가 아프다고. 편지를 썼나 봐. 그래서 아픙께 안 했대."
 
뼈가 아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설악산에 놀러 갔다. 산을 오르고 있는데 똑, 소리가 났다. 등이 잔뜩 부었다. 병원에 가니 고름이 찼다고 했다. 수술을 했다. 그래서 정대에게 편지를 쓸 때 몸이 아프다고 적었다. 그래서 다른 여자에게 갔다고? 치사한 놈.
 
예비고사는 떨어지고, 교대 시험도 떨어지고, 정대라는 놈은 가버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점순이는 아버지가 쌀장사를 하는 서울로 갔다. 언니는 여태 임신과 출산에 매여 있는 엄마와 영산포에 있었다. 동생들도 영산포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점순이 혼자 무뚝뚝한 아버지와 서울 한남동의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쌀장사는 '겁나게' 잘됐다. 잠실, 말죽거리까지 배달을 갈 정도로. 제3한강교가 생기기 전이라 배를 타고 배달을 했다. 점순이는 배달하는 총각들 밥을 가져다주는 일을 했다. 세 사람분의 밥, 그 무거운 걸 날마다 이고 다녔으니 지금에 이 병이 생긴 거라고, 점순이는 생각한다. 돈을 벌었으면 땅을 샀어야지, 하고 점순이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몇 년 후 영산포에 있던 엄마와 언니, 동생들도 모두 서울로 올라왔다. 언니와 동생들이 하나, 둘 결혼하는 동안 점순이는 결혼의 기회들을 다 놓쳐버렸다. 그러다 혼기가 한참 지나버린 점순이는 마음이 급해졌다. 점순이 나이 서른셋. 중매로 기호를 만났다. 기호는 부모가 계신 전남의 시골집으로 점순이를 데리고 갔다.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집 출신인데 그래도 나랑 결혼할 거냐, 기호가 물었다. 점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순이는 그의 잘생긴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인사를 시키러 집에 데리고 갔더니 조카들이 기호가 조용필과 똑같이 생겼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결혼을 하고 서울에 신혼집을 차렸다. 이듬해 재훈이를 낳고 2년 후 수지를 낳았다.
 
"그래서? 정대는 어떻게 됐어?"
 
37년 후. 결혼 후 내내 살던 서울을 떠나 4년 전 내려온 전남 시골집에서, 약 부작용으로 몸을 흔들흔들 가만히 둘 수 없는 점순이에게 딸 수지가 묻는다. 뭐 그래 갖고…. 그렇게 흐지부지 흐르다가….
 
"한 번은 미국으로 연수 간다고 연락이 와서 공항에서 만났어. 나 주려고 목걸이 샀다 그러더라. 다음에 만나면 준다고. 그러더니. 이랬어. 너는 친구가 간다는데 뭐라도 좀 주지, 돈이라도 조금 줄줄 알았는데, 서울깍쟁이다 점순이 너. 그리고는 빠이빠이. 그게 끝이야."
 
준다던 목걸이는 받지 못했다. 그때가 언제야? 수지가 묻는다. 그건 몰라. 점순이 툭, 내뱉는다. 뭘 몰라. 아니 몰라 나는. 언제가 언젠지, 그때가 몇 살 땐 지, 몰라. 몇 달 전에 병원에서, 입원하고 퇴원하는데 나보고, 69살이라 그래. 기가 막혀. 수지와 점순이가 함께 웃는다.
 
"그러고는 다시는 연락이 없어?"
"연락하려면 내가 해야 해. 학교로 물어봐야 해."
"하고 싶어?"
"아니."
"왜."
"몸이 이런데 어떻게 하냐?"
"몸이 안 이러면 할 거야?"
 
점순이는 한참 말이 없다. 수지는 모른다. 점순이가 정대 생각에 말이 없는 건지, 그저 귀찮아져서 말이 없는 건지, 아니면 수지와 대화하는 내내 그랬듯,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한 마디 겨우 내뱉고는 한참 동안 몸을 흔들흔들하느라 말이 없는지. 정대는 알까? 2018년 9월의 어느 밤, 제 첫사랑 점순이가 남쪽 시골 마을 구석진 곳에 자리한 그녀의 집에서 딸과 제 얘기를 했다는 걸. 하긴. 정대가 알긴 뭘 알겠는가. 조금 아프다고 해서 다른 여자와 홀랑 결혼해버린 치사한 정대가 무얼. 새벽 2시가 다 되었는데 자야 하지 않느냐고, 잠에서 깨 거실로 나온 기호가 묻는다. 점순이가 기호를 슬쩍 쳐다본다. 점순이는 이따금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녀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다른 삶에 대해. 이를테면, 정대와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에 대해. 그랬다면 이 병도 없지 않았을지, 지난날의 가난과 고생도 없지 않았을지, 하고 가끔 상상해봤을까. 점순이가 정대 대신 얻은 것들. 기호와 재훈, 수지.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 함께 겪은 시련, 함께 견뎌낸 실패와 좌절. 그녀가 그것들을 다 후회스럽게만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점순이 딸 수지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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