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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지 Mar 21. 2021

이스라엘을 걸었다. 그리고 남편이 기절했다.

허머스, 바다, 그리고 사막: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1,000km 1

무릎 위로 선명하게 베어난 눈썹 크기의 상처. 눈을 움찔일만큼 빨갛다.      


어지러워.      


D가 눈을 감는다. 어? 야, 안 돼. 잠들면 안 되는데? D는 1분 전, 바위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졌다. 어렸을 적 보던 만화영화에서 오리 캐릭터가 넘어지듯 꽝! 하고. 그랬던 그가 이제 정신을 잃고 있다. 영화에서 보고 배웠다. 이럴 때 잠들면 절대 안 된다고. 타이타닉에서도 디카프리오가 잠에 빠지는 바람에 죽지 않았나? 아니, 죽을 때가 되어서 잠에 빠진 건가…. 아무튼 안 된다. 안 돼! 일어나라! 물을 마셔라! 일어나!     


D의 뺨을 마구 때렸다. 어쩌지?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구급차가 이 깊은 숲 속까지 올 수는 있고? 숲 속을 걸은 지 세 시간 정도 되었다. 두 시간은 더 걸어야 차 다니는 도로에 닿을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도로까지 가는 방법은 걸어가는 것뿐인데. D가 안 깨어나면 어쩌지? 구급차를 부르고 하염없이 기다려? 전화가 안 터지면? 그를 질질 끌고 숲 밖으로 나가야 하나? 그건 불가능해. 그러면 D를 숲 속에 홀로 남겨두고 마구 달려가서 도움을 구해야 하나? 늑대가 와서 잡아먹으면 어쩌지? 예상, 계획, 대비, 두려움, 압박....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마구 섞여 머릿속을 팽팽 돈다. 어이, 남편! 일어나! 일어나라고! 제발!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왼쪽 사진에 보이는 삼색 마크가 트레일 표시이다.


나의 외침에 D가 몸을 부르르 떤다.    

  

“뭐야? 뭐 하는 거야? 일어나라니까 왜 몸을 떨고 지랄이야? 이 상황에서 장난 칠 기분이 들어? 장난치지 마!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D가 움직이지 않는다. 


장난이 아니다…. 장난이 아니야?!      


야! 야아아! 일어나! D의 뺨을 마구 때렸다. 그가 눈을 살며시 뜬다. 다행이다…. 야! 물 마셔! 물! 마셔!  

    

“…. 눈이 안 보여. 온 세상이 하얘.”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운 D가 말했다. 뭐? 눈이 안보여? 이런 씨발! 설상가상 게임이야 뭐야 이건! 정신 차려! D의 하얀 이마에서 투명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네가 안 보여. 앞이 안 보여. 무슨 소리야! 바로 앞에 있는 내가 왜 안보여! 정신 좀 차려봐!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트레일은 이스라엘 북쪽 끝인 '단'에서부터 남쪽 끝인 '엘랏'까지 이어져있다.



어떡하지. 갑자기 일어나서 그런가. 갑자기 빛을 봐서 그런가. 내 머리 위에 꽂혀있던 선글라스를 얼른 벗어 D의 눈에 씌웠다. 일단 물을 마셔봐. 그의 손에 물통을 쥐어주고 물티슈를 꺼냈다. 그의 무릎에 깊게 베인 상처 주위를 살짝 닦았다.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D의 얼굴에서 땀을 닦아냈다.      


이제 어쩌지. 더는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두렵다. 곧 괜찮아지길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도와 줄 사람을 불러올 수 없고, 그를 업고 갈 수도 없고…. 무서워. D가 정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스라엘까지 와서 사막 트레킹을 하자고 한 나를 평생 용서하지 못하겠지. 아, 나는 왜. 우리는 왜. 



우리는 함께 사막을 걸었어(2): 빌어먹는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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