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지 Mar 27. 2021

이스라엘을 걷다 먹는 허머스의 맛

허머스, 바다, 그리고 사막: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1,000km 3


우리는 함께 사막을 걸었어(2): 빌어먹는 여행의 시작 



레아에게 아침으로 커피와 오트밀을 얻어먹었다. 레아가 점심 용 샌드위치를 만들어 준다기에 뻔뻔함을 연습할 겸 거절하지 않았다. 레아, 너는 정말 ‘엔젤’이구나.      


“빨리 먹고 싶다.” 


D가 말했다. 단에서 시작하는 이스라엘 네셔널 트레일의 첫 트레일 마크를 지나온 지 십 분도 안돼서. 그래도 양심 상 두 시간은 걷고 먹어야 하지 않겠냐? 이제 막 시작했잖아. 마을길, 밭길, 공원길을 걷고 걸어 강도 하나 건넜다. 모든 게 샌드위치로 보인다. 저 산은 샌드위치 빵. 저 들은 두툼히 바른 허머스*. 공원 하나를 더 지나 참지 못하고 샌드위치를 꺼냈다. 거대한 빵에 허머스와 피클, 햄이 들어있다. 허머스를 넣은 샌드위치는 처음 먹어보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다. 핸드폰으로 얼른 검색해본다. ‘허머스는 냉동 보관을 해야하는가?’ 그렇단다. 아쉽다. 단백질이고 속도 든든하고 값도 싸고 영양가도 많아서, 트레일 식량으로 딱인데.


걷고 걸었다


“보관 때문에 들고 다닐 수가 없다면, 작은 통을 사서 한 번에 다 먹어버리면 되지.” 

D가 한 입 남은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우적댄다. 허머스는 우리가 중동 지역으로 여행을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다. 인도 바라나시에서 중동 음식을 처음 접한 후 허머스와 팔라팔에 푹 빠져버린 우리다. 트레킹 하는 내내 먹을 수 있다면 즐거울 텐데. 


단에서 12km 거리 떨어진 텔 하이(Tel Hai)까지 걷는 게 오늘의 목표다. 텔 하이에 야영장을 제공하는 유스호스텔이 있다는 정보를 트레킹 정보 홈페이지에서 찾은 터다. 레아가 아는 트레일 엔젤도 텔 하이에 산다. 레아가 미리 전화를 해 주기로 했다. 잘 곳이 확보되니 안심이 된다. 샌드위치 덕에 속도 든든하고. 이제 마음 편히 걷기만 하면 된다. 


강을 건너, 올리브 나무를 지나.. 운 좋게 아이스크림 집을 만나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고..




오후 1시 쯤 레아에게 문자가 왔다. 텔 하이에 사는 트레일 엔젤이 전화를 안 받는단다. 야영장이 있다는 유스호스텔에도 전화를 해 봤다. 야영할 수 있는 장소 같은 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들이란…. 다 쓰레기야! 하지만 쓰레기 밖에 없다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수밖에…. 주로 야영을 하며 이스라엘 네셔널 트레일을 완주했다는 영국 트레커의 블로그를 찾았다. 첫 날은 키리앗 쉬모나(Qiryat Shemona) 마을 옆 야산에서 야영을 했단다.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도 야영을 하자. 


걷다 보면 '군사 지역'으로 접근 금지라는 안내문이 종종 보인다. (오른쪽)



산 하나를 건너니 키리앗 쉬모나 마을이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작은 도시 정도. 도시를 직선으로 가로질러 3-4시간 정도를 걸어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트에 들러 빵과 허머스를 샀다. 물을 리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방황하다가 공동묘지에서 수돗가를 발견했다. 공동묘지에 설치된 수돗가의 물이라는 게 살짝 찜찜했지만.... 닥쳐 온 갈증에 금세 찜찜함을 버렸다. 물을 반 통씩 마시고, 밤에 또 갈증이 날 수 있으니 두 병을 다시 채웠다.      


언덕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두 시간 쯤 걸어, 키리앗 쉬모나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나무 사이에 텐트를 쳤다. 텐트 안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남은 빵과 허머스를 조금 먹었다. 다시 갈증이 났다. 오늘따라 물이 많이 먹힌다. 물을 아껴야 하는데.... 둘이서 물 두 통을 거의 다 마시고 4분의 1통이 남았다. 내일 다음 마을까지 내려가려면 한참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때나 물을 충전할 수 있을텐데. 괜찮을까.       


시내에서 큰 파티를 하나봐. D가 말했다. D와 나는 텐트 안에 나란히 누워있다. 산 아래에서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콘서트를 하나."

내가 말했다.  

"아, 오늘 목요일이지."

"내일이 금요일이나까 샤밧*이잖아.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이 파티하는 날이래. 토일이 아닌 금토를 쉬니까. "

  

앞으로 샤밧이 줄 시련(?)을 알 턱이 없던 D와 나는, 사람들의 흥겨운 함성 소리를 들으며, 시끄러운 줄도 모르고 빠르게 잠에 들었다. 



*샤밧: 유대교에서 지키는 1주 가운데 제7일(토요일).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다. (이스라엘에서는 주말이 토일 대신 금토라고 생각하면 된다.) 샤밧에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상점도 열지 않고,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아랍계 사람들이 운영하는 편의점 등을 만날 수 있지만.. 드물다. 



시내가 보이는 산 위에 텐트를 쳤다.


이전 02화 빌어먹는 여행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