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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와 B형 남자 1

서로가 변했음을 함께 받아들인다는 것

by 복덩이

변하지 않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160cm가 되어 윗공기를 체험해 보고 싶었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나의 키 157cm. 새벽까지 헛짓거리를 한답시고 돌돌 말린 번데기가 되어 있는 내게 눈치 없이 찾아오는 내일. 아지랑이가 되어 증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찬물을 퍼부으며 '제길 여전히 살아있다.'라고 실감하는 순간.


'그럼에도 봄은 온다.'라는 시구가 있다. 꽃이 피고 지며, 해가 뜨고 밤이 오는 순환 속에서 자연을 통해 불멸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곤 한다. 그러나, 2050년이 되면 그 영원할 것 같은 봄은 지구 온난화로 없어질지도 모르고, 157cm라는 나의 키도 초승달처럼 조금씩 둥글게 변하는 나의 척추를 따라 줄어들고 있다. '살아있다.'는 자각의 순간 이미 나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살았다'의 기준은 시시각각 변하며, '피어남'을 생명력의 최고조의 상태로 본다면, '꺾인' 나는 노화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난, 연애를 한 번 밖에 못했다. 첫사랑과 결혼한 경우다. 연애 기간은 9년이 넘었고, 결혼은 10년 차다. 나의 20대와 30대는 그렇게 흘러간 셈이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빛나는 내가, 볼수록 블랙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내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다.


그는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육아를 하며 어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남편밖에 없는 나와, 먹고 먹히는 갈등 속에서 시달리고 온 그는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셈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고 왔던 날, 나는 아주 긴 울음을 토해냈다. 세상은 불공평하며 사랑은 없다고. 그 밤은 아주 길게 늘어졌다. 식탁에서 자를 수 없는 울음을 길게 뽑아낼 때 그는 말없이 티브이를 보았다. 여느 때처럼. 그는 울음에 약했다. 부엌 구석에서 울던 엄마를 문틈으로 몰래 보며 어렸던 그는 저리는 마음을 달래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자라지 못한 그는 불편하고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티브이에 실려 보냈을 뿐이었다.


"너도 장모님 닮아서 그래. 자기 고집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너도 앞으로 치매 조심하라고"

"넌, 회사에서 다들 너 욕하지. 이 집에서 너 없으면 평화로워. 넌 그냥 돈만 갖다 주면 돼"


그는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나도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잘 안다는 건, 냉정하고 아픈 상처를 가져온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바닥까지 서로를 쉽게 끌고 갈 수 있었다.


마트 시식으로 저녁을 해결해도 당신과 함께라서 뭐든 행복하다고 하던 나는, 하루의 사투를 벌이고 온 그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고 네모난 공간에서 당신만을 기다리는 게 지겹고 불행하다고 소리쳤다. 예뻐서 나와 결혼했다던 그는 하루 종일 씻지도 않고 설거지를 쌓아놓고 사는 아줌마인 나를 향해 너로 인해 미칠 것 같다고 소리쳤다.


백설공주는 영원히 예쁜 공주로 남았을까?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한 그녀는 출산으로 기미가 올라오고, 늘어진 뱃살을 가진 채로 우아하고 품격 있는 왕비로 계속 남았을까?


한번 터지면 봇물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싸움은 2시간을 훌쩍 넘길 때가 많았다. 그러면 나는 굳게 입을 다물고 집을 나가 계단에서 한참 흐느꼈다. 아이들에게서 어릴 적 내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도망간 나에게서 아이들을 지켰다.


사실 궁금하다. 나를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지금도 남녀 간의 에로스와 플라토닉 사랑이 결합된 노래들은 여전히 흘러나오고 우리는 결혼이라는 법적, 육체적으로 속박된 제도를 스스로 선택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송곳으로 때로는 서로를 찌르기도 하며, 때때로 같은 공간의 존재감만으로 서로를 불편해한다.


그는 나에게 무엇일까? 나의 질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릴 적 구석에서 울고 있는 내가 트라우마인 나는 자녀들에게 그것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그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 방법을 전혀 모르겠다. 아니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느낀 적이 없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노력할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변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그것이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 결코 점칠 수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어느 날은 나와 다른 점이 멋있어 보였다가, 어떤 날은 그 점이 눈꼴 셔서 공간에 묻어나는 그의 체취에도 몸서리 칠지도 모른다. 우리는 20년 동안 서로를 둥글게 만든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조각칼로 깎아내기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해묵은 감정들을 미쳐 돌볼 틈이 없었고, 돌보는 방법도 몰랐다.

<이어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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