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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력기와 절름발이 사랑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것

by 복덩이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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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아까비!"

  매미의 맴맴 소리가 선풍기처럼 시원하게 귓가를 때리던 그 여름밤, 친구이자 친구가 아닌 개똥이가 어설프게 손을 잡으려다 혼잣말을 했다. 간질간질 손을 애달프게만 하고 한방이 없던 개똥이에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욕을 했을 뿐.


  가끔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아주 큰 심호흡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문의 손잡이를 열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을 짐작하기에 신발끈이라고 묶으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순간.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며 벅찬 마음을 날려 보내지만, 어떤 이들은 다만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어찌할지 몰라, 규정짓기도 힘든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어느 계절의 어떤 시간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께서 농약을 드시고 자살하셨다는 큰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주는 무게에 대해 곱씹어 보지도 못하고 아버지께 허망하게 뒤뚱거리며 갔다.


  "우야지. 어떡하면 좋노."


   그게 다였다. 눈물을 흘리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지만 그 목소리, 뒷모습, 공기, 공간, 냄새가 마음에 새겨졌다. 그것은 아버지가 뱉을 수 있는 제일 허황되고 슬픈 말이었다. 그 목소리가 가슴으로 들렸다. 난, 나의 손을 꽉 잡고 또 잡았다. 다른 것들을 잡을 게 없어 내 양손을 쥐고 또 쥐었다. 빨갛게 자국이 남고 또 남아도.


  솔직히 장례식장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술을 자주 마시던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살갑게 대해 주지 않았다. 170cm 60kg가 겨우 넘었던 아버지는 그 조그만 체구에 정미소만 하면 부자 된다는 말에 40kg가 넘는 몇 백개의 쌀가마니를 매일 코피가 나도록 옮기고 옮겼다. 그렇게 몸을 담보로 큰집의 빚을 갚았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매 순간마다 주어진 것들을 그냥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에게 술주정뱅이가 되었다. 보고 배운 게 그거라서, 매일 매 순간 주어진 것들을 그냥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 슬픔을 푸는 법을 몰라,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그 이유를 따진다면 수만 가지가 넘겠지만 엄마와 어린 자식들에게 그냥 술주정뱅이 아빠였다. 15살 병나발을 불며, 나는 너 닮아서 너 따라서 술주정뱅이 될 거라고 소리를 치는 내게 엄마는 무릎 꿇고 그만하라고 사정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구석에서 그렇게 꺼이꺼이 울었다. 사는 게 서러워서. 내 마음대로 안돼서.


  사춘기의 어느 날 밤이었다. 삼킬 수 없는 생각들로 밤을 곱씹을 때가 많았다. 왠지 불 꺼진 방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자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날, 그날도 아빠는 술을 먹었다. 나의 손에 달그락거리는 호두 두 알을 쥐어 주고 갔다. '여기에 참기름 발라서 손에 굴려봐.' 아마 본인이 어릴 적 놀던 방식이었나 보다. 우리에게 한 번도 산타할아버지를 알려준 적은 없었지만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왕복 1시간이 넘는 시내에서 공룡 인형을 사 왔던 당신. 물 부은 컵라면을 다 쏟았을 때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 줄게.'라고 말하며 말없이 치워준 당신. 술을 그렇게 먹고, 술을 먹으며 아픔을 잊으며 일을 하면서 우리 삼 남매에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난 대학을 졸업했다.


  아빠는 말이 없고 연약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도망가지 않았다. 우리 삼 남매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었고, 그는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떨어지기 않기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아귀를 부여잡고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리고 아빠는 언니의 결혼식을 2주 앞두고 경운기에 깔렸다. 평생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아빠는 진짜 죽음의 문턱에 갔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빠 없이 우리는 결혼식을 잘(?) 치렀다. 그리고 꼭 그렇게 1년 뒤에 나는 결혼을 했다.


  아이들이 축가를 해주었고 난 결혼식 하객들에게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으며 빛나는 태양이 되어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의 표정, 손짓 하나 보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의 아빠를 보지 못했다. 절뚝이는 다리가 혹시나 딸에게 누가 될까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큰 용기로 한 걸음 내딛을 때 눈물짓던 아빠.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돈 부쳐줄까?"라는 말로 대신한 투박한 사랑밖에 모르던 당신.  


  부러진 채 붙을 수 없는 갈비뼈로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며, '아프다. 도망가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대신 아등바등 살 줄밖에 몰랐던 아빠의 절발이 사랑. 그건 그가 배우고 아는 최고의 사랑의 형태였다. 아빠는 아빠의 사랑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 한 것이었다.  


  턱걸이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꽉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악력기다.   어떤 이들은 놓는 것도 용기라고 말한다.


  근데, 놓을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데. 흉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어도 놓을 수 없는 게 있잖아. 매달려 있는 게 멋있지는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포기하기 싫은 게 내 마음인 걸. 큰 욕심 안 가지고 몇 가지만 한 번 꼭 쥐어 보고 싶다는데 세상은 그 한 귀퉁이 떼주는 도 그렇게 고까워한다. 네가 중력의 힘으로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면, 난 손모가지라도 걸겠다.


  새벽까지 분주히 움직여도 어깨 한 번 피기 어려워 일어설 용기가 없어도, 세상이 나를 어떤 잣대에 올려 그 모습이 폼나지 않아도 '나'라는 '지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 안의 중력으로 난 악력기라도 꽉 쥘 것이다. 그렇게 쥘 수 있을 때까지 손이 터져 움켜쥐다 눈물을 터뜨린 다음에.


 "난 누구보다 멋있게 그것들을 안고 날아오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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