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오감을 깨우는 여행 Episode.24
글로벌 매거진 MONOCLE이 선정한 전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 12위, 아시아에서 살기 좋은 도시 2위 후쿠오카. 아시아의 관문으로서 수많은 국제선이 취항하고 있는 후쿠오카는 도시 중심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하카타만이 펼쳐져있고, 도심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뛰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래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힐링을 하기 위해 찾았지만, 강을 따라 줄지어 있는 포장마차와 모츠나베, 라멘, 야키도리 등의 현지 음식들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미식의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후쿠오카 식도락가들이 발품팔아 찾는 특별한 맛집들을 소개한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스물네번째 목적지는 후쿠오카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한국의 티머니카드 같은 역할을 하는 교통카드 니모카 (Nimoca) 를 구입한 뒤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텐진역으로 향했다. 텐진역까지는 공항선으로 약 11분정도 소요되는 거리라 공항에 도심으로 가는데 부담이 없다. 텐진역에서 걸어서 10분정도에 있는 무인호텔 미즈카 다이묘에 체크인 한 뒤 무거운 짐을 던져두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에 도착한지라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뜨끈한 후쿠오카식 뚝배기 물만두와 군만두를 먹을 수 있는 교자노테무진으로 이동했다. 교자노테무진은 후쿠오카에서 교자 맛집으로 손꼽는 곳으로 만두피와 만두소를 일일히 빚고 있는 정성이 가득한 곳이다. 특히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들이 반죽을 직접 치대며 만두를 빚고 있기 때문에 식사하는 내내 활기가 넘친다.
공간은 바와 홀, 룸 좌석으로 나눠져있는데 역동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바 자리를 택하시길!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요리를 골라 먹을 수 있다. 이 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단연 군만두와 물만두다. 군만두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피는 얇고, 그 안에 만두소는 옹골차게 차있어 한 입에 쏙 넣기 좋았다. 물만두는 조금 특이하게 나왔는데 뜨거운 물이 자작하게 차있는 뚝배기 안에 정말 만두를 넣어서 제공하는 리얼 물만두였다.
보들보들한 질감과 깔끔한 국물은 좋았지만 너무 깔끔한 맛이라 녹진한 한국의 사골육수 만둣국이 조금 그리워지긴 했다. 탄수화물이 더 필요하다면 볶음밥을 꼭 주문하시길! 고온의 웍에서 만드는 볶음밥으로 단무지와 파가 송송들어가 씹는 맛도 좋고 간이 삼삼하여 생맥주와 함께 먹으면 기가막힌 궁합을 느낄 수 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후쿠오카 미식가들에게 소문난 프렌치 내추럴 와인바 르 루비스를 찾았다. 르 루비스는 2007년에 후쿠오카의 북쪽에서 가게문을 열고, 최근에 후쿠오카 도심으로 이전했다. 주력 메뉴는 프랑스 요리와 내추럴 와인으로 약 11년 넘게 운영을 해오며, 후쿠오카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미식가들이 내추럴 와인 성지순례길로 찾는 곳 중의 하나다. 남편은 요리를 하고, 부인은 와인을 추천한다. 오픈형 주방이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두 사람 모두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와인은 잔으로도 즐길 수 있고, 병으로도 즐길 수 있는데 어떤 요리를 주문하느냐에 따라 추천 와인이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요리에 맞는 잔 와인 추천을 받는 것이 좋다.
직접 튀긴 포테이토칩에 둘러싸여있는 고등어숙회를 비롯해 30분동안 고기 양면을 돌려가며 주물팬에 굽는 스테이크, 완두콩으로 만든 푸딩 등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르루비스만의 특별한 요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리는 사카에야 스테이크였다. 사카에야는 일본 시가현에 있는 니쿠 사카에야라는 곳에서 직접 받는 소고기로, 워낙 귀한 품종이라 전국에 이 고기를 받을 수 있는 매장은 서른여 곳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르루비스는 사카에야 소고기를 스테이크로 즐길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로 겉면을 바삭하게 익히기 위해 30분간 양면을 돌려가며 불 옆에 서있어야 한다.
그래서 셰프가 바쁠땐 이 요리를 맛보기 힘들기 때문에 방문 전에 전화로 예약을 하는 것이 좋겠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지방과 단백질이 적절하게 퍼져있는 속은 촉촉하고, 겉은 마치 후렌치 후라이의 끝부분을 먹는 것 같은 바삭함이 느껴진다. 여기에 부인이 추천한 오렌지 와인과 비오디나믹 방식으로 생산한 다비드모로의 상뜨네 프리미에 크뤼 ‘클루 후소’ 를 함께 곁들이니 고기의 감칠맛이 배가 되어 입 안 전체를 부드럽게 자극시켰다. 다비드모로의 와인이 마음에 들어 한 병으로 주문을 해버렸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여행의 피로를 치유하고 가고 싶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우루우비. 여기도 부부가 운영하는 2인 식당으로 주변에 상업시설이 없는 주거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택시를 타고 내리니 ‘깊은 산 속 옹달샘’ 이라는 노랫가락이 떠오른다. 정원을 지나 미닫이문을 여니 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나무로 만든 집이었다. 이 곳에서는 남편이 손님 맞이를 하고, 부인은 요리를 한다. 일본음식 전문 블로거의 표현에 따르면 우루우비는 ‘사랑, 지혜, 문화’를 모토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요리는 정이 없으면 자라지 않고, 은혜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문화가 없으면 상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한다.
요리는 단품으로 주문할 수도 있고, 코스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면 코스 주문을 추천한다. 런치 코스는 3,000엔으로 약 7~8가지 요리가 제공되며 음식이 천천히 나오기 때문에 약 두시간 동안 식사가 이어졌다. 모든 요리는 직접 수집한 그릇 위에 나뭇잎 한장을 올려 나오는데, 청아하고 단아한 담음새에 기분이 좋아진다. 첫번째 요리는 완두콩 스프로 소금간 전혀없이 약간의 크림을 넣어 저어먹는다. 두번째 요리는 데친 두릅 위에 토마토 소스를 올려 감칠맛을 살렸다. 세번째 요리는 완두콩보다 작은 콩과 콩깍지가 통째로 나오는데 얼마나 아삭한지 씹을때마다 머리 속에 아삭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어서 튀긴 마, 작두콩 푸딩, 된장 소스에 담긴 닭고기 구이, 생선 구이가 들어가 있는 크레이프가 나왔고 참나물 된장국과 직접 지은 하얀 밥으로 식사를 마무리하였다.
식재료 본연의 맛이 무엇인지 탐구심을 끌어내고, 자연의 맛이 무엇인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우루우비.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면 우루우비의 치유의 음식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글 | 사진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foodie.angela@gmail.com)
푸드디렉터 김유경 (필명 안젤라) 은 디지털조선일보 음식기자 출신으로 MBC 찾아라 맛있는 TV, KBS 밥상의 전설, KBS 라디오전국일주와 같은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왔고, 테이스티코리아 유투브채널을 통해 한국의 맛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안젤라의 푸드트립 채널을 통해 세계 음식과 술, 그리고 여행지를 국내에 알리고 있으며, 네이버 포스트와 네이버 TV (http://tv.naver.com/angelafood) 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요리는 오감을 깨우는 여행이라는 철학으로 오늘도 맛있는 기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