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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슈퍼 Oct 16. 2023

저녁 시키는 게 제일 싫었어요

막내의 의무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이 두 가지 있었다.

1 야근할 때 저녁을 시키는 일

2 회식 장소를 고르는 일


나는 직장을 5번 옮겼는데 3번째 옮길 때까지 막내였다. 지금 생각하면 막내라는 단어도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당시엔 막내라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야근할 때 저녁을 시키고, 비품을 주문하고, 가끔 커피를 사 먹고 영수증을 모으는 일. 다른 일은 다 좋았는데 저녁 시키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프로젝트 마감이 가까워지면 팀 전원이 야근을 할 때가 많았는데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으로 시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무척 많다. 치킨, 피자, 닭볶음탕, 샐러드, 김밥, 돈가스, 짜장면 등등.


하지만 아무도 메뉴를 정해주지 않는다. 막내가 알아서 해, 하면 그만이다. 알아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맛있게 먹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전체를 조망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어제 제육볶음을 먹었으면 오늘은 돼지고기가 안 들어간 메뉴를 고르는 센스. 매운 음식과 삼삼한 음식을 적절하게 섞는 센스. 나눠 먹을 때는 모자라지도 넘치도 않게 시키는 센스. 외근 나가있는 선배에게 들어와서 저녁을 먹을 거냐고 물어보는 세심함까지.


나는 막내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끝까지 이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센스도 없었을 뿐더러 그 일이 너무 싫었다. 따로 먹으면 좀 좋아? 왜 회사사람들의 음식 취향을 머릿속에 넣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메뉴를 틀리게 시키고, 넘치거나 모자라게 시키고, 매운 음식만 잔뜩 시키기도 했다. 일부러 그랬던 건 절대 아니다. 꼭 변수가 있었다.


저녁을 시켰을 때 생길 수 있는 변수

_수저가 모자라게 온다.

_새로운 식당에서 주문했는데 맛이 없다.

_새로운 식당에서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거나 적다.

_그렇다고 매번 같은 곳에서만 시키면 불만이 폭주한다.

_외근 나갔던 선배가 돌아와서 자기 것은 왜 안 시켰냐고 한다.

_아무거나 시키래서 아무거나 시켰는데 왜 맛없는 것만 골라서 시켰냐고 한다.


저녁을 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야근하는 날 저녁 여섯 시.

“저녁 뭐 드실래요?”

역시 아무도 대답이 없군. 점심때 동태찌개를 먹었으니 저녁은 햄버거를 시켜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말한다.

“얘들아, 매콤한 거 땡기지 않아?”

....

선배들은 왜 대답을 안 할까? 내가 또 대답한다.


“매콤한 거요? 김치찜 어때요?”

“김치찜? 너무 헤비 하지 않아?”


“그러면.. 매운 짬뽕 어때요?”

“짬뽕? 너무 자극적인데..”


“그럼 낙지볶음 어때요?”

“그건 너무 맵지 않을까?”

어쩌라구

“너무 배부르지 않으면서도 매콤하고 맛있는 거 없나? 오늘 스트레스받았더니 매운 게 땡기네.”

그게 뭘까? 머리를 쥐어짜본다.


“떡볶이는 어떠세요?”

“떡볶이? 좋다 좋다! 떡볶이 먹자. 주문해 놓고 찾으러 가면 되겠네!”


그냥 처음부터 떡볶이 먹자고 말해 제발.


선배들은 분명 알아서 시키라고 할 테지만 물어는 봐야 한다.

“분식집 시킬 건데 뭐 드시고 싶은 메뉴 있으세요?”

“너가 먹고 싶은 걸로 시켜.”


가깝고 평점도 무난한 곳에 주문을 넣는다.

“떡볶이 삼인분, 순대 이인분, 튀김 이인분에 김밥 세줄요. 지금 찾으러 갈게요. 아 오뎅국물도 부탁드려요.“

전화를 끊으려는데 선배가 말한다.

“간 많이 달라그래.”

“어어 잠시만요. 간 많이 주세요.”


포장해 온 떡볶이, 김밥, 튀김을 회의 테이블에 놓는다. 나는 나눠서 먹는 음식이 싫다. 내 앞에 한 그릇을 온전히 혼자 먹고 싶다.


주섬주섬 사람들이 모여온다. 한 선배가 종이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한참 쳐다보더니 묻는다.

“쿨피스 안 사 왔어?”

“쿨피스요?”

“떡볶이 먹을 때 쿨피스는 기본이지.”

“아….“(저는 콜라 먹는데요)


팀장님이 떡볶이가 너무 달단다. 다시는 여기서 시키지 말라고 한다. 선배는 순대 간이 너무 퍽퍽하단다. 맛있기만 한데?

“저는 괜찮은데요?”

“너는 다 맛있다고 하잖아.”


떡볶이가 너무 달지 않고 순대 간이 너무 쫀득한 곳으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는 길에 쿨피스도 사 오고. 생각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아니 내가 무슨 저녁 시키려고 회사 왔나. 떡볶이를 씹고 있는데 내가 오기 전 막내생활을 오래 했던 선배가 날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각자 알아서 먹고 영수증처리하면 얼마나 좋아? 가끔씩 야근할 때 약속이 있다고 하고 혼자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들어갔다.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는 저녁시간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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