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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Mar 30. 2016

음식문화 I 기다림의 맛, 개춘연잔치와 조지훈

제철맛을 이해하지 못하는 음식트랜드를 생각하며…

開春宴개춘연

바햐흐로 완연한 봄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세상에는 그 이름도 생소한 개춘연잔치.

특별한 형식이나 내용은 없다.

그저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봄을 느끼고 나누는 시간.


싱그런 봄나물이 주가 되는 잔치는 패스트푸드에 빠져있고 잠간을 스치는 유행에의해 움직이는 입맛이나 고기에 길들여 있는 요즈음에는 어쩌면 그리 반갑지 않을 이야기 일 수 있다.

한겨울을 지내는동안 묵었던 나물을 보름을 지나며 털어버리고 싱그런 봄나물로 새로운 계절을 여는 잔잔한 축제.


계절을 뒤바꿔 억지를 부리며 나오는 음식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래도 제철이 언제인지는 안다.

사시사철 나는 냉이도 있지만 봄철, 제철을 알고 땅을 뚫고 올라오는 냉이도 있다.

진정한 슬로푸드는 이렇게 서두르지 않고 제철을 기다렸다 피어나는 식재료로 만든 것이다.


요즈음은 스스로가 느끼든, 주위에서 부추기든 어찌 되었든 미식가들이 넘쳐난다.

20여년 전만 해도 압도적인 한분인 백파선생을 제외한다면 감히 식도락가라는 말을 내밀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60년대 보릿고개로 힘들었고 일하기 바빴던 70년대를 거쳐 민주화의 열풍이 일던 80년대를지나 겨우 주위를 돌아보며 잊혀진 많은것들을 찾을 90년대에나 와서 먹거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 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90년대 중반부터 여행에 먹거리를 함께 하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음식을 보았고 나누었다.

잘 모르던 아니, 익숙치 않았던 나물의 향을 돌아본다.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시인으로 알려진 조지훈은 식도락가로도 유명하다.

까탈스럽게 먹지는 않았으며 음식의 맛과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고기보다는 생선을 생선보다는 나물을 더 즐겼다.

그는 음식에도 멋을 부여하는 방법을 알았다.

새봄이되면 열린 開春宴개춘연잔치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미나리는 江上春강산춘, 생미역과 달래는 山海菜산해채, 이런식으로 접시마다 이름을 붙이고 진달래, 개나리 버들개지도 곁드려 운치를 돋구었다.

좋은 가양주에 가야금 한가락 춤 한마당까지 있으면 흥이 이에서 더함이 없었을 것이다.

醉翁취옹의 뜻이 술에 있지 않다더니 나의 식도락은 먹는 맛에만 있지 않고 풍취에 있다.

조지훈은 실제로 어려서부터 산나물을 즐겨 먹었고, 커서도 산나물을 자주 찾아먹을 수밖에 없는 곳에서 주로 생활했다.

조지훈의 고향인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에 있는 일월산엔 천지에 산채가 널려 있었다.

특히 일월산은 한약재 산지로 전국에 이름난 곳으로써, 그는 씁쓰름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는 산채와 한약재의 맛을 일찌감치 알고 그 맛에 길들여질 수 있었다.

또한 젊어서 한동안 절간생활을 하였던 그에게 사찰음식의 대표주자격인 산채는 그야말로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먹거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즐겨 먹었던 산채 중에서 요즈음엔 맛을 보기 쉽지 않은 것으로는 '금죽'이라는 나물이 있다.

금죽은 조지훈의 고향인 일월에서만 소량으로 자생하는 희귀식물로서,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어, 옛날에는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올리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이 금죽을 말려서 쇠고기를 함께 다져넣고 끓인 국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이 금죽의 맛과 향이 너무 강해 일단 이 금죽을 물에 담가 우려내야 비로소 향기가 있지 그냥 금죽을 덤벙덤벙 썰어넣었다가는 맛이 너무 써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조지훈은 이 금죽의 맛에 깊이 감탄하여, 그와 교류가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春谷춘곡 高羲東고희동 선생과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였던 葦滄위창 吳世昌오세창 선생에게도 이 금죽을 직접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흔히 미식가 혹은 식도락가 하면 경제적으로 음식에까지 넉넉하게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팔자 좋은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지훈은 진정한 식도락이란, 비싼 돈 들여 화려한 음식을 찾아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묘경, 사람 사이의 인정을 섞어 우리 주변에 늘상 널려 있는 담박한 맛을 찾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식도락이라고 말하였다.


패스트푸드와 외식메뉴의 범람 속에서 혹시 우리 현대의 도시인들은 조지훈이 말한 진정한 식도락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좀 더 자극적인 맛, 외래의 맛만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는지…


올 봄엔 우리나라의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산채가 세상에서 제일 맛이 있어 매일 상에 올려도 질리지 않는다는 조지훈의 소박한 식도락을 보며 다사로운 볕에서 자라나는 봄나물을 향에 취해보는건 어떨까…


그림 순서대로

1. 금죽나물, 곤드레나물, 단풍취나물

2. 당귀나물, 곰취, 눈개승마(삼나물)

3. 더덕새순, 참두릅, 엄나무순(개두릅)

4. 바디나물, 머위새순

5. 일월비비추, 윤판나물

6. 명이나물(산마늘), 취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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