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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May 27. 2018

제주의 음식 11 돔베고기

열넷. 흑돼지 클래식

흑돼지구이는 이제 제주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먹지 않으면 안되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육지에서도 삼겹살 구이가 시작된건 3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삼겹살이란 단어도 1959년에 처음으로 신문에 등장했고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돼지고기 자체가 여름에 피하는 고기였다.


1960년대 초중반에는 살아있는 돼지나 냉동 돼지를 수출했지만 돼지 부산물의 수요가 없던 일본의 요구로 1968년부터는 머리와 내장을 제외한 2분도체로, 1969년부터는 다시 부분육으로 변경된다.

1971년 일본에서 돼지고기를 수입 자유 품목으로 지정하자 우리나라의 대일 수출은 더욱 활발해져 몇 백만 톤 수준이던 돼지고기 수출이 1972년에는 3800톤, 1976년에는 4500여 톤으로 급증하게 된다.

수출이 불가능한 돼지 머리, 내장, 다리, 뼈 등이 남아돌자 대도시에 모여들던 빈민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돼지고기 특수부위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1인당 국민소득 500달러는 경제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육식이 본격화되는 임계점이다.

1975년 이후 육고기의 수요가 폭발한다.

일본으로의 돼지고기 수출은 질병의 발생이나 계절적 요인, 수급 상황 때문에 수시로 가격 변동을 초래하면서 국내에도 돼지 특수부위가 아닌 살코기 부위가 시장에 나오게 된다.

삼겹살은 서양은 물론 일본에서도 기름기가 너무 많아 그다지 인기 있는 부위는 아니었다.

서양에서는 삼겹살 부위를 Belly벨리라 부르는데, 주로 훈제한 베이컨으로 많이 먹었다.

중국이나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는 삼겹살 부위를 두툼하게 썰어 삶거나 쪄서 양념한 후에 먹었다.

Draft of belly pork

돼지고기의 해외수출이 본격화된 1980년대 초반에 삼겹살은 수출이 불가능한 부위였다.

양돈업계는 이와 관련 돈육수출에 따른 결손을 보상하기 위해 「Belly(삼겹살) 등 수출 잉여 부위에 대한 수매비축 등을 강력히 촉구」(1980년 4월 10일자 매일경제)했다.

축협 중앙회의 조사에 의하면, 1981년까지만 하더라도 돼지살코기(56.7%)보다 삼겹살(39%)의 선호도는 떨어졌다.

기름기가 많고 싼 삼겹살은 도시 노동자를 위한 외식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을 넘어가면서 삼겹살은 도시 노동자들에게 ‘반주로 마시는 소주와는 뗄 수 없는 안주’가 된다.

90년대를 지나고 냉장 유통체제가 본격화되면서 국민 육고기로 등극하고 2007년에는 85.5%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돼지고기 선호 부위(2007년 5월 7일자 서울신문)가 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제주산 오겹살이 서울에 등장한다.


제주에서는 신구범씨가 제주도지사로 재직하던 90년대 초 중반이 제주 축산 중흥기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돼지고기가 흔해졌다.

흑돼지와 고기국수의 대중화는 이때 부터이다.


그렇다면 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돼지를 어떻게 먹었을까.

돗수애(순대), 돗새끼회(암퇘지 자궁 속의 새끼돼지로 만든 회), 돔베고기(수육)가 제주 전통 흑돼지 요리다.

돗수애_감초식당
돗새끼회


한 사회의 음식은 그 사회의 구조를 나타낸다.

- Claude Levi Strauss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옛날 추석을 앞둔때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아 추렴(어느 한 사람이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사는 것이 버거우니까 친목 모임 회원들이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것)을 한다.

돗추렴.

차례 지낼만큼을 저장해 놓고 나머지 자투리를 삶아 즉석에서 썰어 먹는다.

어느 미디어에서 쉐프가 나와 도마를 가리키며 돔베라 칭한다.

음식을 올려 놓고 썬다는 의미는 같지만 모양은 사뭇 다르다.

돔베를 이해햐려면 정지(부엌)구조를 들여다 봐야한다.

제주의 도마(돔베)는 다리가 길게 달려 있는 독특한 구조를 보이는데 이는 제주의 초가집 정지(부엌)가 그냥 흙바닥이었기 때문에 음식물에 흙이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구조로 만들어진것이다.

그 도마위에서 갓 삶은 돼지고기를 썰어 놓고 멜젓이나 초간장을 찍어 먹는다.

몇점 안되는 수육이지만 온식구가 서너점씩 나눠먹는 정겨운 음식이다.

고기도 보쌈의 수육과도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돔베고기는 더 오래 삶아 기름기가 더욱 많이 빠져 고기가 매우 쫄깃쫄깃하다.

돔베고기 소스로 젓갈이 나온다.

하지만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왕소금 두 어개 찍어서 먹는 맛도 일품이다.


전통음식인 돔베고기는 흑돼지구이처럼 쉽게 접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걸리고 구이처럼 자극적이지도 않다.

찾는이도 드물지만 돔베위의 삶은고기가 얹여진 고기뿐이다.


삶은 요리가 구운 요리보다 경제적이고 낭비가 심하지 않다.

삶은 요리에는 고기들과 그 육즙을 보존하는 측면이 강하고 구운요리에는 파괴와 상실을 수반한다.

삶은 음식이 생명이라면 구은음식은 죽음이다.

......

전자가 절약이라면 후자는 낭비다.

전자가 평민적이라면 후자는 귀족적이다

- Beyond Beef 육식의 종말 Jeremy Rifkin 제레미 리프킨 ;Claude Levi-Strauss 인용문


마을에서 잘 자란 검은 도새기를 한 마리 잡아 추렴한 고기를 막 삶아 돔베에 올려놓고 썰어 먹는 돔베고기.

생각만 해도 식욕을 부른다.

제주를 여행한다면 한번쯤 권하고 싶은 도새기 클래식,


돔베고기.


제주의 돔베고기하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곳이 호근동이다.

서귀포 내륙에 있는 동네 지명이 아니라 호근동 출신 할머니께서 20년 하는 제주 시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음식점이다.

대학로로 불리는 제주 시청 건너편 제광교회가 멀리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다보면 왼편으로 보이는 화려한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상호가 눈에 들어온다.

늘 저녁 시간이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다.

몸국, 돔베고기, 제주식 순대, 창도름(막창) 등 제주 향토 음식을 전문으로 한다.

이집 돔베고기는 낡은 나무 도마 위에 제주산 오겹살 수육을 정갈하게 얹고, 한쪽에 굵은소금을 뿌려 낸다.

한점 집어서 아무런 간을 하지 않고 먹으면 흑돼지 특유의 향이 올라오면서, 일반 보쌈보다는 조금 딱딱하지만 쫄깃한 식감이 기분좋게 입안에서 고기를 씹을 수 있게 해준다.

살짝 소금을 찍으면 고기에 간이 첨가되어 새우젓으로 먹는것 보다는 더 육향을 살리면서 먹을 수 있고, 함께 나온 멜젓을 찍어 먹는 것도 흑돼지 구이에 멜젓을 함께 먹는 것 만큼이나 제주도스러운 맛이 나서 좋다.

노부부와 직원인 아줌마 한분이 운영하는데 돔베고기가 대표적 메뉴지만 창도름, 순대도 맛있다.

100% 제주산을 쓴다.

두번째 집은 이미 서귀포 시민들과 육지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서귀포의 천짓골.

무엇보다도 이곳을 찾아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가장 염두에 둬야할 부분은 사전예약이다.

고객의 주문을 받고나서야 삶기 시작하며, 고기의 질과 맛도 고객의 취향에 따라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이 이유다.

최소한 미리 삶아두는 돼지고기는 아니라는 것.

손님의 취향에 따라 삶아진 돼지고기, 금방 삶아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예약을 할 때에는 살을 선호하는지 비개를 선호하는지, 부드러운 고기를 원하는지 쫄깃한 고기를 원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이집에서 차려지는 밑반찬은 어묵과 두부, 계란반찬 등 몇 가지를 빼고는 대부분 돼지고기와 곁들여 먹는 반찬들이다.

맬젓(멸치젓)은 구운 돼지고기든지 삶은 돼지고기든지 돼지고기와는 환상적인 궁합을 보이는 최고의 반찬이다.

찍어 먹기만 하면 고기특유의 잡내를 없애주고 쉽게 질리는 것을 막아준다.

주문한 돼지고기를 꺼내오는데 먹기 좋게 썰어서 나와야 할 돼지고기가 덩어리 채로 탁자위에 놓여진다.

이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요리방식이다.

금방 삶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 미리 주방에서 썰어 놓으면 식어버려 맛이 떨어진다는것이다.

도마와 칼을 직접 주인장께서 들고 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썰어주신다.

먼저 맛을 봐야하는 방식이 소리 없이 부드럽게 시작되는 칼질, 고기는 식기 전에 다른 양념이 없어 고기의 질감과 깊은 맛을 가장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게 바로 도마 가장자리에 놓인 왕소금에 찍어 먹는다.

그리고 바로 맬젓을 찍은 살점을 상추에 올려놓고 양파와 마늘, 된장을 올려놓은 뒤 싸서 먹는다.

잡냄새가 나는 돼지고기라면 모를까, 이집의 돼지고기는 양파와 마늘의 강한 향이 맛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그냥 먹는 것이 좋은것 같다.

도마 위에 가지런히 썰어진 돼지고기 오겹살, 그리고 왕소금, 그리고 이집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묵은지 김치.

돼지고기를 먹을 때 가장 어울리는 묵은지와 함께 먹는다.

마지막으로 무채에 싸서 돼지고기의 맛을 느껴본다.

최근에 모 TV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통에 이슈가 된 가시아방국수는 제주의 동쪽, 성산에 있는 고기국수집으로, 일단 고기국수집은 돼지고기를 삶아야하므로 수육이 항상 있을 수 밖에 없다.

성산쪽에서 전통적으로 유명한 수육집은 성산항 입구에 있는 옛날예적이라는 상호의 음식점이었지만 이제는 어쩌면 그 추세가 뒤집어진것도 같다.

어쨋든 허름하게 시작했던 이 집은 새롭게 신축한 건물로 이사했고 번호표를 받는 곳중 하나가 되었다.

진한 육수와 도톰한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간 고기국수와 부들부들한 식감과 잡내 없이 깔끔한 돔베고기는 이 곳에서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 맛을 보기에 결코 아깝지 않다.

오히려 돔베고기로 먹는 것보다는 고기국수로 먹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라는 황교익의 말에 공감한다.

전통의 옛날옛적에도 깔끔하고 옛스러운 밥상이 인상적인 곳이다.

이집도 얼마전 새로운 신축 건물로 바뀌었는데 그 전엔 성산일출봉에서 오조만을 끼고 성산갑문으로 향하다보면 오래된 집에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집이었다.

여기에 한곳을 추가한다면 장사를 시작한지는 얼마되지 않지만 집에서 들고온 밥상을 받는듯한 느낌의 쌈밥집 선흘곶이다.

밥, 국, 장, 전, 나물, 일품요리까지 모두 합쳐 열아홉 가지가 상에 오르는데 단순히 가짓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말리고, 불리고, 데치고, 볶고, 무치고, 절여 만든 반찬은 젓가락에게 쉴 틈을 주지 않을만큼 제 역할을 십분 발휘한다.

백동산습지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자연주의 음식점에 올라오는 부들부들한 돔베고기는 주변의 기본 찬들의 중심을 잡아준다.

이 밖에도 앞에서 이야기한 고기국수집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자매국수집이나 몸국으로 명성이 자자한 신설오름의 그것도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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