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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한량 Feb 10. 2024

바쁠때 만큼은 '돈코츠 라멘'

동탄 출장길에서

주문 과정이 단출하고, 음식이 내어오기까지 거의 패스트푸드급으로 빨리 나오는 음식이 필요하다.
오늘처럼 바빠서 점심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날엔 딱이다.
특히 추운 날에 너무 잘 어울리는데 아쉽게도 영상의 날씨라 그리 춥지는 않다.


내가 동탄에 있을 때 자주 찾던 라멘집이기도 한데, 4년 전 이직한 이후로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한 때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찾는 가게이기도 했다.

여전히 가게 안은 사람이 가득 차 있다. 웨이팅이 있을법한데 다행히 늦은 점심시간에 도착한 터라 금세 자리가 생긴다. 가게가 협소한 탓에 만석이면 어수선하다거나 산만한 기운이 넘쳐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먼저 먹을 기회를 획득한 사람들이나 웃음 가득이라 기운이 넘친다.

1인 이용자는 테이블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자연스레 바 테이블에 착석한다. 조금만 팔을 휘둘러도 서로의 팔꿈치로 서로의 젓가락질을 간섭하게 되니 몸은 적당히 움츠린다. 나름 덩치가 있는 편이라 눈치를 줄 법도 한데 좌우 측 먼저 착석한 분들은 자연스레 약간의 공간을 내어준다. 이런 행동들을 보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작은 배려가 몸에 베여 있는게 아닐까싶다.

바 테이블 자리 중 극히 일부분이 물컵이라던가 나무젓가락 등이 저쪽에 몰려 있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이 그렇다.
그렇다고 불편한 건 없다.
처음 보는 모르는 이에게


저기 잠시...


머뭇머뭇 젓가락이나 컵을 가져가려 하면, 그것 또한 모르는 사람끼리의 친절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딱한 사정이라 그런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부분을 이미 알고 있음이다.  서로가 웃으며, 필요한 것들을 내어준다.

그들도 대부분 혼자 라멘 맛을 보려고 방문한 이들이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친절 외 별다른 대화가 있다거나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지는 않는 듯하다.(나는 궁금한데...)

하필이면, 오늘 외근 시 회사 로고가 박힌 겨울 점퍼를 입고 있어 살짝 민망하다.

나를 궁금할 리 만무하지만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적어도 나에 대해 하나는 알게 되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단 하나도 모르는데 그대는 일단 나보다 한 개 정도는 정보를 내어준 것에 대한 억울함이 생긴다.



가게에 들어서면서 음식은 미리 주문했으니 기다릴 일만 남았는데, 하필이면 도움받은 양쪽 젊은 친구들 음식이 동시에 놓인다.
왼쪽 젊은 남자는 규동이다. 내가 음식을 주문하기에 가장 갈등했던 선택지다. 밥과 면 중 고민했던 듯싶다.
바쁘니 호로록 후다닥 먹을 수 있는 면을 선택했다. 오른쪽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츠케멘이다. 벌건 매운 라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인스턴트 라면이 이보다 매운맛을 내기에 맵기의 정도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은 나로서는 침만 얼씬 삼키게 된다.
저걸 시켰어야 하나? 미세한 후회도 있긴 하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규동 냄새가 저쪽으로 꺾으면 츠케멘의 짭짤한 고추기름 향이 슬쩍 나오는 게 참 반갑다.

단 한자리도 비는 것 없이 착석되어 있으니, 코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요리사들의 표정이 더 진지해진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 남자 세명은 그동안의 합으로 서로의 간섭이나 고민 따윈 없이 본능적으로 휘리릭 꺼리며 음식 제조에 심혈을 기울인다. 코앞에 얇은 장막만 없다면, 만들어지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음에 생동감이 넘친다. 좁은 틈 사이로 음식을 내어 나오는 게 보인다. 직감이다. 저건 내 거다.
말할 것도 없이 얼른 그릇이 안전하게 착석하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젓가락이나 컵 따위를 한쪽 자리로 매듭짓는다.
촉은 정확했다.



입가에 미소는 본능이다. 아니다. 아마 내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도 모를 거다.
돈코츠 라멘을 먹을 때 가장 먼저 하는 행위는 저마다 다름이 있다.  

 • 국물을 먼저 한 숟갈 떠먹는 사람들도
 • 급한 마음에 즉시 면을 집어삼키는 성미 급한 사람들 
 일단 입안 정돈 차 물로 가글을 일삼는 사람도 있다.

    (가게의 물은 우려낸 재스민 차라 그것도 괜찮겠다 싶다)
 차슈를(고명으로 얹어 먹는 돼지고기) 한 움큼 베어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작부터 너무 무거운

     편이라 차슈부터 먹는 사람을 나는 본 적 없다.
 • 나는 계란부터다.

반숙 계란.
계란 프라이를 하더라도 나는 항상 노른자가 톡 하고 쏟아져 흐르는 모습을 좋아하기에 돈코츠 라멘의 삶은 계란도 좋아함이 상당하다. 노란색 끈적한 노른자가 면 위에 슥 버무려지는데 일단 그것 먼저 한 움큼 집어 든다.
대한민국 산업 발전을 위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서둘러 먹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면을 먹고 국물 한 숟가락 하고, 함께 토핑 된 숙주나물 한 움큼 지어 집어삼킨다. 어쩌다 엑스트라의 자리에서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는 김치나, 생강 절임으로 느끼함을 잡는다. 특히 생강은 입안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다시 먹게 하는 그런 이상한 효능이 있는 듯해서 감초 중에서는 으뜸으로 생각한다.

먹는 도중 방심하다 받게 된 왼쪽 남자의 친절함에 오늘의 방문에 인간미가 넘쳐난다.
"저기 여기 휴지.." 본인 입 매무새를 단정히 하기 위해 뽑은 휴지는 손이 닿지 않는 나에게도 선 듯 건넨 준 것이다.
내가 손이 닿지 않아 불편해함을 기억하고 있었고, 묻지 않아도 스스로 선택한  배려에 요즘 갖지 않은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에 아껴둔 차슈를 나뉘어 베어먹지 않고, 과감하게 한입 가득 넣어 오래도록 씹는다. 돈코츠 라멘의 진한 육수와 고기의 그 육수가 즈압 새어 나오는데 그게 희열감이 장난 아니다.
이제 국물만 남았는데 아직 한발 남았다.


저기 여기 공깃밥 하나 주세요


나의 본능적 미소는 다행히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끼의 식사로는 아쉽지만, 후식으로 먹기엔 너무나도 적당한 양.
아담한 사이즈의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나오는 밥이 손에 턱하니 잡힌다. 추가 지불 없이 요청하면 내어 나오는 밥의 퀄리티가 괜찮다. 그리니 절대로 지나칠 수 없다. 내가 만약 많이 먹지 않는 소식의 인간이었다면, 아마도 면을 좀 남겨서라도 밥을 먹었을 것이다.

국물에 밥을 가득 말아서 먹어도 되지만, 일단 시작은 나름의 방식으로 토렴해서 먹는다. 푹 담갔다가 빼고 담갔다가 빼기를 두어 번 해주고 한입 가득 넣어 씹는다. 그전에는 완만한 1차 방정식 포만감이었던 것이, 밥을 먹는 순간 2차 곡선, 탄젠트 곡선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게 바로 밥의 힘이다.



분명 바쁜 관계로 일찍 내어오고, 후다닥 호로록 먹으려 방문한 곳인데 음식이 사라질 때마다 아쉽다.
맛도 맛이지만 아마도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1달이 될 수도 6개월이 될 수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이 4년 전이었으니 말 다 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런들 어쩌 하리.
아쉽지만 젓가락을 놓는다. 주변을 바라본다.
빈자리 슬쩍 보이기 시작한다.

살짝 발생한 빈자리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라앉히지는 못한다.
끝까지 기분이 좋다.
어수선함 속에 친절함이 있고,

끝난 줄 알았던 음식에 감초가 발생한다.
하나만 시켰지만 하나만 먹지 않았다.
혼자 먹지만 혼자 먹지 않는 가게다.

아쉽다면, 라거 한 잔.
업무시간에 방문한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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