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솥밥이라는 게 압력밥솥보다 쌀이 익기 위해 끓는 물의 온도가 더 높다 보니 향이 좀 더 풍부하다. 거기다 요즘 가게에서 내어 나오는 개인용 솥밥은 뚜껑이 나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약간의 나무 향도 배어 나오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 어떤 나무로 만들어졌는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른다. (나무 향은 자주 쓰다 보면 없어지지 않을까?)
근데 거기에 옥수수의 고소한 향이 더해지니 솥밥의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이미 기분이 좋다. 일단 입안에 고여 있는 침부터 꼴까닥 삼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본능이다. 솥밥 사이사이에 끼어 있을 거라 상상했던 말풍선이 말끔히 펑 사라지고, 쌀 위에 불규칙적으로 위치한 강원도산 찰옥수수가 빼곡하다.
서두른 마음으로 솥밥에 가득 찬 그것들을 벅벅 긁어 대니 순식간에 솥밥의 코팅된 누룽지가 나 타단다. 옆에 둔 뜨거운 물로 코팅 라인까지 부어 주고 나무 뚜껑을 닫아주면 훌륭한 디저트 숭늉이 완성되어 있으리라. 밥을 뜰 때마다 골고루 입안으로 들어오게끔 밥알 사이사이에 옥수수가 베이도록 슥슥 비벼 준다.
일단 아무런 추가 물 없이 한입 한가득 집어넣는다. 첫 뜨거운 옥수수 솥밥이 입안 향을 자극하는데 씹으면서도 양념을 추가할 까 말까 고민한다. 입에 들어온 옥수수는 한 알은 어금니로 다음 또 한 알은 앞니로 옆 니로 송곳니로 한 알씩 와그작 거린다. 초당옥수수나 통조림의 옥수수와는 또 다른 찰옥수수만의 톡톡거림 때문이다. 그게 참 재미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씹어 삼키게 되고, 어쩌다 보니 나의 위장도 소화시키는데 부담이 덜해진다.
이제 양념장을 부담스럽지 않게 슥 뿌려 또 한입 베어 먹는데, 조금 전 첫 한 숟가락의 온전한 옥수수 솥밥을 한 숟가락 더 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양념을 버무린 상태가 맛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라 충분히 양이 보장되는데 너무 서두른 감이 있어서다.
간장을 주재료로 한 양념장은 고소하지만 슴슴한 옥수수 솥밥에 짭짤한 감칠맛을 더해줘 조금 전보다는 점 더 빨리 음식을 먹게 된다.
사이드 음식으로 나오는 청국장찌개와 아주 잘 맞다. 슴슴한 옥수수 솥밥에 찐하게 끓여 낸 청국장찌개의 조합의 딱이다. 청국장 한 숟갈 먼저 뜨고 솥밥을 먹어도 좋고, 고소한 기분을 먼저 느끼며 짠맛을 끼어얹어도 훌륭하다. 간간이 솥밥이나 청국장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밑반찬을 넣는다. 밑반찬은 한가득 베어 무는 건 별로다. 감초는 감초로써 존재하니 그 역할만 해주면 좋겠다.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입안을 비우고 밑반찬만 먹는다. 괜찮다. 우리나라 밑반찬도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하니, 꽤 먹을 만하다. 15~20회 정도 반복하다 보면 바닥을 드러내는데 아직 마지막이 남아 있어 크게 아쉽지 않다. 어쩌다 혀로 치아 사이사이의 매무새를 단정히 하다 옥수수가 한 개 걸리면 그게 또 그렇게 반갑다.
누룽지는 이미 불어 숭늉이 되어 있다. 이제 주인공이 바뀐다. 앞에 있던 놋그릇은 비어있는 테이블 어느 쪽이든 치워두고, 솥 자체를 내 앞으로 대령했다. 호로록 천천히 마시는 듯 씹는 듯 먹다 보면 적당히 포만감도 들고, 내 위장을 본 것도 아닌데 괜히 소화도 잘되고 있는듯하다. 숭늉은 그런 존재다.
옥수수 솥밥은 가게 계산을 하고 나서는 순간에도 기분이 좋다. 적당히 옷에 베어든 고소한 향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밥솥이나 압력 밥솥이 존재하기 전 모든 시골에서 대부분 사용했던 거대한 무쇠 솥밥까지는 아니어도 개인용 솥밥이라도 경험하는 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