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소리에 무너지다

by 장기정


월요일 아침 출근길 운전은 늘 지친다.

'또 시작이네.'


월요일 아침답게 내비게이션은 도착 예정 시간을 계속 늘려준다.
여기저기서 먼저 가려고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가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정차해 있는 동안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유튜브를 연다.

예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가 있어 잽싸게 누른다.
그런데 웬걸, 차량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대사와 웃음소리가 그저 소음으로 들린다.
하나도 웃기지 않다.


이마저도 안 될 때는 마지막으로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를 켠다.
'이건 좀 낫네.'
가보지는 못했지만 유럽의 어느 평화로운 시골마을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이 나를 진정시켜 준다.


일찍 출근을 해서 명상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창밖 차량들의 소음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린다.
분명 나이 들어 청력이 감퇴할 때도 됐는데, 소머즈의 귀처럼 바깥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그래서 출근 후 명상은 포기했다.


어느 날부터 소리에 예민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청각과민증 증상을 겪고 있었다.
진료할 때 쓰는 핸드피스—치아를 정밀하게 다듬기 위해 사용하는 초소형 고속 드릴—의 날카로운 고주파 소음에 반복 노출되면 이런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진료 중에도 밖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사람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고,
누군가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소리가 들리면 잠시 멈춰야만 했다.


내 귀에 들어오는 자극적인 소리가 내 감정을 직접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 꽉 막힌 도로, 주말의 여독이 남아 있는 피곤함.
이 모든 조건 위에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들이 더해지면, 내 기분은 쉽게 무너진다.

아이들이 날 선 목소리로 다툴 때마다 내 감정이 쉽게 흔들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일을 계속하는 한 이 청각과민증과 완전히 이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버럭 아빠’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나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무엇에 흔들리는지,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올라오는지 조금씩 관찰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외부의 소음이 아닌, 내 안의 흐름에 집중하게 된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심장이 먼저 반응하고, 거친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굳는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있다.
회복되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사람은 환경에 반응하며 살아가지만, 그 반응을 어떻게 다룰지는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의존하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나를 지탱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나라는 시스템'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을 마치며]

처음 글을 올릴 때는 이 이야기를 누가 읽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계속 써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20편의 글을 쓰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제 안에도 생각보다 많은 소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문장으로 옮기며 조금씩 정리해 왔습니다.


이 매거진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저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에 가까웠습니다.


그 과정을 조용히 함께해 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기록은 충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제 이 매거진은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제 삶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전 19화어느 거인이 남긴 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