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열어보는 미래 독자의 취향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북큐레이터 서동민입니다.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그 속에서 발견한 브런치 책방 이야기를 좀 풀어보겠습니다.
도서전에 다녀왔다는 제가 가장 자주 들은 질문은 "어땠어?"였습니다. 단순히 좋았느냐 나빴느냐를 묻는다기보다 어떤 변화가 - 긍정이든 부정이든 - 있었느냐 혹은 어떤 반영 - 트렌드 혹은 취향의 진격 - 근거를 발견했느냐는 뉘앙스가 묻어있는 질문이었어요.
대답은 세 가지 정도로 했습니다.
1. 독립 출판의 진격
2. 취향 저격의 콘텐츠
3. 큰 출판사들의 세력전
2016년이었나요, 극단적으로 축소된 규모로 진행된 도서전은 심지어 코엑스 1층을 빼앗겼었죠. 다음 해에는 1층 A홀을 수복했을 거고, 그 동안과는 다른 기획을 시도한 지난 해에 비로소 B홀까지 확장하면서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보수적으로 할인전에 몰두하던 출판사와 싼값에 책을 살 수 없게된 부분에서 매력을 잃었던 독자 양측에서 변화가 두드러진 결과였습니다.
절대적인 면적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밀도나 얼핏 들은 사람들의 대화는 독립출판이 조금 더 확고하게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게 했어요. 한 예로 한 대형 출판사 부스에서 책을 둘러보던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별책부록'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는데, 별책부록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별책부록 책을 보다가 여기를 보니까'로 시작되는 거였습니다. 그 후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별책부록이 발행한 출판물과 대형출판사가 발행한 출판물이 경쟁할만 하다는,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더 나은 면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듯 했습니다.
독립출판물을 얘기할 때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내용과 완성도였는데 그 부분을 보완하고 강화한 출판물이라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죠.
얘기를 이어가면 취향 저격 콘텐츠와도 맞물린 부분이 있습니다. A홀에는 하나의 골목이 생겼는데 잡지 코너였어요. 잡지의 다양한 주제, 필진, 구성은 어떤 부분에서 보면 독립 출판물의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코너가 하나의 골목으로 구현될만큼 비중이 커졌다는 - 물론, 상대적으로 - 부분은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큰 출판사 들의 세력전이라고 하면 저마다 더 넓은 부스를 차지하고, 더 크고 화려한 코너 장식을 의미하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제는 각각의 출판사들이 특징을 살리면서 무게 중심이 되어준다는 인상이 깊었습니다.
도서전에 참여한 큰 출판사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북클럽'입니다.
창비의 책읽는당, 민음사의 민음사북클럽, 문학동네의 북클럽문학동네.
민음사와 문학동네의 경우 북클럽 회원에게만 적용 혹은 사용 가능한 코너를 만듦으로써 궁금증 유발과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었어요.
독립출판, 취향저격 콘텐츠, 큰 출판사들의 세력전에는 모두 개성과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도서 정가제 개정 전후에는 없었거나 희박했지만 필요했던 부분들이 비로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힌트가 아니었을지. 물론 출판사 입장에서는 도서 판매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온라인에서 사면 더 싸게, 더 다양한 사은품까지 얻을 수 있다는 장점에, 무게 역시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아쉬운 점이라면 참여자, 관람자, 독자들이 참여해서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고, 성심당만 눈에 띄었다는. 웃자고 하는 얘깁니다만 그 웃음이 시원하기보다 쓴 맛을 남기기는 합니다.
이제, 브런치 책방으로 이야기를 마칠게요.
브런치 책방, 작가의 서랍展은 브런치 앱 공지에서 봤지만 어떤 느낌으로, 무엇을 보여주려는 건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가봤는데 여기서는 아쉬웠던 점 보다는 긍정적이었던 부분을 들여다 볼게요. 딱 한 가지 크게 아쉬웠던 건 주제를 고르라고 하고서는 제가 고른 주제 콘텐츠가 아니라 큐레이가 고르고 싶은 걸 골랐다는 거였거든요. 하지만 그 역시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고 골라준 이야기'라는 부분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상쇄될 수 있다는 걸 한 번 더 느끼게했습니다.
브런치를 처음 접한 시기에는 '작가를 위한 플랫폼'이라고 인식했어요. 일정한 심사를 거쳐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는 작은 자부심에 더해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아줄 거라는 기대정도를 품었습니다.
이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게 되었고요.
작가의 서랍전에 붙은 부제는 '미리 열어보는 미래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제 경험을 보태 고쳐보면 '미리 열어보는 미래 독자의 취향'이 될 거고요.
취향은 다양하고 깊이도 깊습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하는 건데 지금까지의 플랫폼에서는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어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됩. 브런치에서는 몇 년 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큐레이션된 콘텐츠, 맞춤형, 취향 저격의 근거들이 단행본이라는 형태로 구현됩니다.
기획의 순서가 달라진 거죠.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기회,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덩달아 콘텐츠 선별과 매칭의 중요성도 커졌죠.
브런치는 작가나 콘텐츠의 역량이나 콘텐츠의 밀도만큼 콘텐츠 에디터와 큐레이터의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이용자와 독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는 과제를 안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나'만'을 위한 콘텐츠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나'를 위한 콘텐츠가 적절한 순간에 찾아오기를 독자는 기다리고, 찾아다닙니다. 정보의 창구가 다양해진 만큼 정보량이 많아졌지만 그 안에서 고르고 발견할 기회는 오히려 축소되는 경우도 잦습니다.
브런치 책방이 던진 질문은 결국 '발견성'과 '연결성'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발견해서 누구와 어떤 방법으로 연결해줄 수 있을까.
취향은 지극히 개인적인듯 보이지만 뚜렷한 공통성도 포함합니다. 공통성과 개별성이 동시에 드러나기도 하기에 취향인 거죠.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 취향을 반영한 시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작가가 해야 하는 건 단순히 '자기 취향에 맞는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글과 연결되고 싶은 독자까지를 생각하는 확장된 글쓰기가 아닐까.
나와 내 취향과 네 취향이 만났을 때 우리의 취향은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주목받을 수 있는 글보다 누군가는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나가야겠다는 생각.
브런치 책방, 작가의 서랍展이 보여준 미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