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34개월, 독자는 할 말을 잃었다.

횡설수설 칼럼

by 가가책방

개정 도서 정가제 시행 2년을 앞둔 지난 해 10월 <도서정가제 2년, 독자도 할말이 많다>는 제목으로 글을 쓴 일이 있다.

그리고 10개월 남짓 지난 지금 정가제 얘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그리 할 말이 많지 않아서 지난 번처럼 길게, 구구절절히 늘어놓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으리라.


얼마 전, 정부와 서적 유통, 출판사, 소비자 대표가 모여 협의를 한 결과 현행 도서 정가제를 3년 더 유지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실망이 컸다.

크든 작든 어떤 형태로든 얼마간 수정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결정 이후 한동안 화가 나 있었다.

책을 사면 살수록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테요,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서점 이익 극대화라는 드러난 문제점, 일부 작은 서점들, 특별한 컨셉으로 성공한 테마 서점들, 유명인이 낸 서점들이 정가제의 성공을 증명하는 예시가 되는 게 기이하기만 했다.


나는 정가제 시행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도서와 컨텐츠에 정당한 가격이 매겨지고, 출판사와 서점 간의 공정한 거래를 통해 책을 원하는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도를 반대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오히려 완전 정가제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이 행하고 있는 유사할인과 적립, 무료 배송은 오프라인 서점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정가제 시행 이후에는 불가능할 줄 알았던 행위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 상황들이 명백히 드러난 지금에도 현행 정가제가 유효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던 이들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작년에 쓴 글에서 현행 정가제가 가져온 부작용 중 하나로 온라인 서점의 중고서점 진출을 짚었었다. 아이러니 한 건 현행 정가제를 강력히 추진했던 이들이 이제는 중고 서점의 비대를 비판하고 있다는 거다. 출판 생태계를 죽이는 암적인 존재라는 비난도 섞여 들린다. 기이한 일이다.


작년 1월부터 10월까지 열 달 동안 16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의 책을 샀다. 올해 1월부터 9월 초인 지금까지 산 책의 금액을 합치면 16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일일이 더해보기 전까지는 작년보다 덜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한 달이나 차이가 남에도 더 많은 금액을 책을 사는 데 썼던 거다.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읽지도 못하면서 뭘 그리 사들인 걸까.


현행 정가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출판계, 도서 시장의 '신간 매출 집중 현상'을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독자가 신간에 몰리는 건 너무나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게 법으로 규제하고 교정하고 수정해야 할 문제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경우 주로 고전과 인문서를 사는데 정가제 시행 전이나 후로 그 패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신간을 더 사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구간에는 할인이 적용되었기에 신간이 구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구매하는 일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동일하기에 기다리지 않고 신간을 사버리게 되는 거다.

신간 비중이 높은 게 왜 문제가 되는가 말이다.


할인의 문제는 더 민감하다. 정가제 시행 전, 구간 도서에 대한 재정가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걸로 안다. 반값 할인 심하게는 80%에서 90%까지 할인하던 책들은 당연히 재정가가 되어야 옳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재정가 되어 가격이 내려간 도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소위 '양서'라고 하는 책들은 더더욱 가격을 공고히 했다. 재정가가 이루어지기는 했다. 개정판이나 증보판이라는 이름으로 정가가 올라간 거다.

할인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재정가 했어야 마땅한 도서들이 재정가 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거다.


현행 도서 정가제의 최대 문제점은 이전에도 지적했듯 모든 책임, 희생이 독자에게 전가된다는 거다. 반대로 수치가 증명하듯 최대 이익의 수혜자가 도서 정가제가 규제하려 했던 대형 온라인 서점이라는 건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는지.

이 부분에 대한 논의나 해명 없이 현행 정가제의 성과가 있어 보이는데 그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니 현행 그대로 3년을 유예한다는 결론의 어디에 설득력이 있다는 건가.


책을 사면 살수록 바보가 되는 기분인 이유다.


정가제의 시행 여부와 내용, 개정과 수정에 걸친 과정에서 진짜 독자의 목소리가 전해지기 어려운 부분은 꼭 수정되어야만 한다. 어디서 활동하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단체가 소비자를 대표해서 논의에 나선다는 건 독자를 기만하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체부 장관에 시인이 취임했을 때 조금은 기대를 했다.

뭔가 어떤 변화라도, 가능성이라도 열릴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다른 부분, 공제니 지원이니 하는 부분에서 방법을 찾는 듯 하던데 그게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나는 이제 조용히 책을 사려고 한다.

얄팍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책을 멀리하고, 독자를 기만하는 출판사와 서점을 배제해 나갈 셈이다. 그렇다고 아주 이용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용을 최소화 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판단이라도 내려보는 게, 결심이라도 하는 게 최선이었다는 얘기다.


나는 정가제가 '무엇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그 목적과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런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건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 목적과 방향은 다시 세울 수도 있고, 되찾을 수도 있는 거다. 수정 불가능한, 절대적인 법칙 같은 게 아니다.

앞으로 3년, 정가제 논의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독자인 나는 할 말을 잃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현행 도서 정가제의 의의로써 국민의 인식 전환을 꼽는 이들이 있다. '할인', '사은품'에 얽매이지 않게된 게 그 첫걸음이자 효과라는 거다. 맞다. 그건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도 효과를 얻기 위해 독자가 감내해야 할 고난은 너무나 컸다고 본다.

독서의 빈익빈 부익부.

통계를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심화되고 있으리라 본다.

할인과 사은품으로 독자를 유혹한 상술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할인과 사은품에 이끌리는 건 인지상정의 문제다.

비유하자면 라면이 위암 발생율을 높이니(맛있고 먹기 편한 라면의 강점) 라면을 없애버린 꼴이 아닌가. 라면의 성분을 개선하거나 사람들에게 적당한 라면을 먹도록 유도하는 게 조금 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느낌이라는 거다.


이제 정말 할 말을 다 했다. 더는 할 말이 없다. 다시 논의가 시작될 때까지, 수면에 파문이 일 때까지, 나는 할말을 잃고 조용히 침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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