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에는 백약이 무효이고 어떤 수술용 칼로도 치유할 수 없다. 그리고 좀 더 젊은 여성을 위해서는 아주 아름답고 또 아주 영리한 어떤 모델의 말을 거울에 붙여 놓아야 한다. '수많은 여자들이 묻는다. 왜 자기들은 우리처럼 생기지 않았느냐고. 그들은 우리도 실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는 걸 모른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ㅡ 쓸데없는 것들의 사전>
지난 토요일,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다녀왔다. 가을빛이 더해진 아름다운 풍경이 감탄을 자아냈지만, 정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면면이었다.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연로한 부모들과 함께 섞여 간간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연으로, 젊은 사람들은 카페로 향하는 현실. 군중 속에서 문득 나도 어느덧 전자에 가까워져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흔히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자랑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곤 한다. 젊음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성형수술을 받거나 최신 유행을 좇으며 젊음을 되찾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늙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관점과 기준을 바꾸면 어떨까. 아름다움의 기준을 외적인 모습에서 내면으로 옮기는 것이다.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 마치 계절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과 나무처럼, 내면은 가꾸면 가꿀수록 더 빛이 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신체적으로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굳이 그들과 차이를 두어야 한다면, 내면을 더 가꾸어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월조차 범접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세월이 내면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한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젊든 늙었든 그 자체로 아름답다. 외모가 여전히 중요한 판단 기준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바로 세월을 초월해서 주변에 빛을 발하는 단아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겸손과 절제로 단련된 인격과 품격, 지적인 품위를 갖춘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후서(4:16)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