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병원에 다녀오는 날

by 서영수

오랜만에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지난가을에 가고 올해 처음 가는 거니 그 사이에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지막으로 갔을 때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수치가 어땠는지, 주치의가 검사 결과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휴대폰에 적어둔 메모를 꺼내 보았습니다. 수치와 상담 결과가 기재되어 있고,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병원에 다니며 체득한 습관입니다. 메모해 두지 않으면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약은 얼마나 받아야 할지 짐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길이 여전히 편하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혹여 수치가 올라가지는 않았는지, 새로운 약을 추가로 처방받는 것은 아닌지, 다시 병원에 가는 간격이 짧아지는 것은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심지어 병원에 가기로 한 날 일주일 전부터는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 신경 쓰입니다. 잠도 예민하게 살핍니다. 그저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하필 월요일인데다 사고까지 겹쳐 예약 시간보다 20분이 늦었습니다. 예약은 자동 취소되고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오전에 회의가 잡혀 있어 진료를 마치고 서둘러 가야 했기에, 좀 더 일찍 나설 걸 하는 낭패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었습니다.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있으면 검사 결과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이내 마음을 바꿔먹습니다. 그냥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자고, 편하게 살자고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제 차례가 되어 검사를 받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검사 기계 앞에 서면 여전히 낯설고 긴장이 됩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종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라는 말보다는, 한 번 더 관찰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주치의는 수많은 환자를 봐서 그런지 제가 무슨 약을 쓰고 있는지 바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간호사가 불러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검사 결과가 어떤지 제가 노심초사하니,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농담으로 "새로운 약 하나 더 처방할까요?" 하고 묻습니다. 순간 긴장이 풀어졌습니다. 서로 웃었습니다. 어느덧 노년에 이른 제 주치의는 제 상태보다 제가 몸담았던 검찰 조직이 없어지는 것에 더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글쎄요."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듭니다. 잔뜩 움츠린 채 사무실을 향해 걷습니다.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건강할까, 고민은 없을까 하고 우문을 던져봅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보다 가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가면서 얻게 되는 유익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만 해도 아프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절제된 생활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병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더 큰 소득은, 절제하며 내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keyword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서영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24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더는 보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