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기록하는 육아

100일의 기적을 위한 벼락치기 노트

by 일상여행가


나는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주 가끔씩 일기를 쓰고, 여행지에 가서나 사진을 찍는, 기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데 코로나와 임신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고, 어느새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 장씩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아이를 만나서 100일 동안 어떤 기록들을, 어떻게 해왔는지 공유해 본다.







아이와 만나기 전의 기록



처음 임신 사실을 확인했을 때 받았던 초음파 사진이 너무 신기했다. 임신 5주 차에는 아기집뿐이 없었는데, 2주 뒤에 가니 아기집 안에 아주 작은 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작은 점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초음파 사진을 하나씩 붙여서 짧게 기록을 해둔다는 게 쌓이다 보니 한 권의 노트가 되었다. 초음파 사진을 받아온 날이면, 여러 가지 기분이 복잡해서 자연스럽게 기록을 하게 됐다.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도 적게 되고,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한 엄마로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무엇보다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가 너를 이렇게나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렸더라고 보여줄 생각을 하면 뿌듯해지는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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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태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만나기 일주일 전까지의 기록




아이와의 첫 만남, 그리고 조리원에서의 기록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출산하고 삼일째부터 누워서 핸드폰에 끄적거렸고, 병원에서부터 산후조리원에서까지의 21일간의 기록을 브런치 북으로 남겼다. 만삭이었을 때 브런치 작가로 승인이 되어서, 한창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은 욕구가 충만했을 때였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몸이 너무 아팠고, 조리원에서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기존에 자궁근종 수술을 했던 부위의 출혈이 심해서, 병원에서는 복부 통증에 빈혈, 갑상선염까지 삼중고를 겪었고,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가기 직전에는 남편과 크게 싸워서 첫날부터 밤새도록 울면서 산후우울증이 시작됐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들었을 때, 꾸준히 글을 썼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병원에서는 몸이 아파서 잠이 안 올 때마다, 누워서 무엇을 쓸지 생각하다가 몸이 좀 괜찮아질 때 핸드폰에 글을 썼고, 조리원에서는 태블릿 pc와 디카페인 커피를 들고, 리셉션에 앉아서 글을 썼다. 출산을 하고 나서 올라오는 허탈하고, 복잡한 기분을 글을 쓰면서 다잡을 수 있었는데, 어떤 것을 쓰는지 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주는 힘을 알게 되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21daystobemom




수많은 사진들, 50일/100일의 기록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 종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매 순간이 새로운 이 생명체는 사진을 안 찍을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아이를 만난 순간부터 내 핸드폰에는 아이 사진으로 가득하다. 이 수많은 사진들은 일터로 돌아간 남편과 쉽게 공유하기 위해서 구글 드라이브에 공유 폴더를 만들어서 행사별/기간별로 업로드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100일의 기간 중에 가장 큰 이벤트는 단연 50일과 100일 사진 촬영이다. 나는 50일 촬영은 조리원에서 연계된 사진관에서 무료로 촬영을 했고, 100일 촬영은 셀프로 집에서 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50일 촬영 (사진관)

장점

1) 부모도 몰랐던 아이의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보게 된다.

2) 다양한 의상과 소품을 활용할 수 있다.

3) 포토샵을 해준다.


단점

1) 조금 인위적인 포즈에 아이의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2) 아이의 컨디션이 좋을 때 가지 않으면 좋은 사진을 건지기 힘들다.

3) 비용이 든다. (사진 촬영은 무료였으나, 원본 파일을 받거나 액자를 만드는데 비용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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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촬영 (집)

장점

1) 아이가 편안한 시간대에 촬영할 수 있다.

2) 비용이 저렴하다. (소품은 다이*를 활용하자)

3) 마음에 들 때까지 찍을 수 있다.


단점

1) 체력소모가 매우 많다.

2) 아무래도 사진관에서 찍는 것과는 퀄리티가 다르다.

3) 사진은 원하는 만큼 찍을 수 있지만, 사진 보정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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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100일이 크리스마스날이어서,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찍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날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아직도 정리가 안 되었다는 것은 불만족) 나는 가급적이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사진관에 갔을 때 아이가 졸린 상태여서 대부분의 사진에서 얼굴 표정이 졸린 표정으로 나와서 슬펐다. 반면에 집에서 찍었을 때는 아이가 컨디션이 좋을 때마다 찍을 수 있었는데, 육아를 하는 와중에, 소품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하는 것을 하루 종일 하다가 아주 녹초가 되었다. 물론, 매우 재미있고, 또 의미 있는 경험이니, 체력이 괜찮은 부모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동영상으로 남기는 기록



최근에 아빠가 유튜브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한 개의 영상이 올라갔는데, 우리 가족을 위한 기록의 차원에서 시작하는 거라 부담 없이 시작한다고는 했지만, 은근 신경이 많이 쓰이는 눈치이다. 육아휴직 중인 내가 집에 있으니 앞으로 내가 촬영을 담당하고, 남편이 편집하여 올릴 예정이다. 아무래도 사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초상권을 운운할까 봐 조금 걱정된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tdJlkG_ZvqXmJzCPXwyZ2A








이제 내일이면 우리 아이는 190일이 된다. 처음 아이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약 15개월의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기록들이 쌓였다. 분명 힘든 순간들도 많았는데, 밝게 웃고 있는 사진들을 보면 행복했던 기억들이 더 진하게 생각난다. 기록은 나를 그때로 돌아가게 만들어주고, 내 상황을 주관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 기억은 더 선명해지고, 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된다. 아이라는 존재가 나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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