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기적을 위한 벼락치기 노트
예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우연히 듣고, 엄마가 되기 전과 180도 달라진 지금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의 사이클에 맞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임신, 모유수유 기간 동안) 몸에 좋은 음식만 가려먹고, 무거워진 몸을 위해 틈틈이 홈트를 하면서,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집 안에서 지내고 있는 요즘의 내 삶. 임신기간까지 포함해 약 18개월 동안의 내 일상은 좋게 말하면 규칙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제약적으로 변했다. 자유롭던 내 일상은 잃어버렸지만, 임신 전보다 좋아진 건강과 소중한 아이가 함께하고 있다.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남편 덕분에 혼자서도 맘이 내키면 훌쩍 여행도 잘 다녔던, (술보다) 술자리를 좋아하던, 자극적인 음식과 그 보다 더 자극적인 넷플릭스를 사랑하던 과거의 나의 일상은 당분간은, 아니 어쩌면 꽤 오랫동안 사라질 것 같다. 임신과 출산 후에는 내 일상이 흔들리는 변화가 찾아온다. 엄마라는 이 거대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몸의 변화 대처하기
임신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몸이다. 나는 입덧과 먹덧, 그리고 막달까지 18kg가 불어난 몸이 너무 무거워 잠을 자다 깨기 일쑤였다. 코로나 덕분에 임신 중기부터 재택근무를 했지만 업무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태교는 둘째 치고, 이러다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았다. 일 외에는 즉흥적으로 사는 삶을 즐기던 내게 3가지의 암묵적인 규칙이 생긴 건 이때부터였다.
1) 잠깐이라도 숙면 취하기
: 임신 초기부터 시도 때도 없이 속이 울렁이는 입덧 때문에 잠을 푹 자기 힘들었다. 그래서 재택근무의 장점을 이용해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낮잠을 잤는데, 20분 정도의 낮잠이 부족한 밤잠의 훌륭한 대체제가 되었다. 카페인을 끊기가 유독 힘들었는데, 커피를 마시더라도 오전에만 한 잔 마시다 보니, 차츰 숙면에 도움이 되었다. 출산을 하고 나서 100일의 기적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육아 휴직한) 남편과 함께 육아를 했는데, 나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2교대 루틴을 만들 수 있었다. 혼합 수유를 했기 때문에 가능하긴 했다. (내가 잘 땐, 남편이 분유나, 유축해둔 모유를 먹였다) 덕분에 나는 계속 저녁 시간에 잠을 잘 수 있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게 된 이후에는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수면교육을 통해) 아이가 통잠을 자게 되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육퇴의 기쁨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하지만, 몸이 피곤하니 보통 아이 곁에서 잠이 들곤 한다. 가끔 육퇴를 즐긴 날에는, 아이의 낮잠 시간에 틈틈이 낮잠을 취하고 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웠던 엄마가 되기 전의 나의 몸은, 길어진 숙면 시간을 아주 달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2) 건강한 음식 먹기
: 엄마가 되기 전에는 음식을 먹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아, 다이어트할 때는 제외하고)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이 몸에 좋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임산부가 되고부터는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 리스트가 생겼고, 먹어야 하는 영양제가 생겼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음식을 챙겨주는 사람이 생겼다.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남편이 (신혼 때보다) 다양한 요리를 해주기 시작했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도 종종 좋은 식재료를 사다 주셨다. 제철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임신 기간에 처음 알게 되었고, 태어나서 가장 많은 과일과 채소를 먹었다. 출산 후에는 우울증이 와서인지, 한 달 정도 입맛이 없었는데, 친정엄마가 지어다 주신 산후보약을 먹고 나서부터 다시 입맛이 돌아왔다. 출산 전에는 아이를 위한 영양제를 먹었고, 출산 후에는 내 몸을 위한 영양제를 먹었다. 결혼 전부터 앓았던 갑상선 항진증 약을 임신 기간에 아이에게 영향이 가지 않는 약으로 바꿨는데, 임신 기간 내내 수치가 잡히지 않아서 고생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수치가 좋아져서 약의 개수가 많이 줄었고, 이제 곧 약을 끊을 수 있을 것 같다. 의사의 말이 출산을 하고 나서 갑상선 기능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4년 넘게 매일 먹던 약을 끊게 된다는 게 아직 실감은 안 나지만, 출산 후에 건강한 삶으로 한 단계 더 다가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3) 내 몸에 관심 갖기
: 조금 이상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내 몸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렸을 땐 남에게 보이는 내 몸에만 신경 썼는데, 이제야 내 몸에 제대로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임산부가 되고 나서부터, 내 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배가 나오면서, 임신선이라는 것이 생기고, 가슴은 커졌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개수는 줄었고, 몸에 튼살크림을 바르는 시간은 늘었다. 몇 단계를 바르던 화장품을 스킨과 크림으로 줄이고, 메이크업을 안 하니 항상 뾰루지가 나던 얼굴이 좋아졌다. 튼살을 예방하려고 열심히 발랐던 튼살크림 덕분에 항상 가려움증을 달고 살던 몸도 좋아졌다. 그리고 임신으로 몸이 무거워지자 홈트와 요가를 시작했는데, 다이어트를 위해서 억지로 참으면서 하는 운동이 아닌, 내 불편한 몸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는 운동을 하자, 운동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사실 임산부였을 때보다, 출산 직후에 몸이 더 비참하다. 아이가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불룩한 배와 임신선 그리고 뚜렷한 제왕절개 자국. 무엇보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뭉텅이로 빠지는 머리카락까지 합세하면 최악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몸을 더 들여다봤다. 산후조리 기간에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요즘에도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꼭 샤워를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해 구입한 향이 좋은 바디샴푸로 여유롭게 씻고, 제왕절개 흉터 연고를 꼼꼼히 바르고, 바디로션도 잊지 않고 발라준다. 고생한 내 몸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시간이다.
마음의 변화 대처하기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임신을 하고 나서 확실하게 실감했다. 몸의 변화에 따라 마음도 요동쳤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좋은 날에는 태어날 아이와 함께할 행복한 미래를 그리다가,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몸이 바로 반응했다. 출산 직후에는 아이와 함께 빠져나간 내 에너지를 대신해 우울증이 찾아왔다. 남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다 서운하고, 산후조리원 혹은 집 바깥에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두가 미웠다. 육아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우울증은 사라졌지만 반복되는 육아 후에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여전히 씰룩거리는 마음이지만, 마음의 변화에 도움이 된 나만의 방법들을 정리해 본다.
1) 혼자만의 시간 즐기기
: 임신 기간 내내 혼자 있는 시간이 그렇게도 싫었는데, 하루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해졌다. 퇴근한 남편에게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던 육아 분담 이야기를 꺼냈다. 독박 육아가 조금 더 길어졌다간 다시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그렇게 남편의 퇴근 후 2.5시간을 포함한 육아 분담 시간표를 작성했다. 주중에는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작은 방에서) 혼자서 운동을 하고 샤워시간을 갖는다. 남편이 아이 목욕까지 시켜주고 나면, 말끔해진 내가 아이를 재운다. 주말에는 아침 4시간, 오후 4시간의 자유 시간을 확보했는데,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혼자 차를 몰고 도심 한 복판에 있는 카페에 가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혼자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카페에 도착해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나만의 시간을 갖다 보면, 한 주 간의 육아 스트레스는 풀리고, 다음 주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다.
2) 할 수 있는 목표 세우기
: 나는 일기는 잘 쓰지도 않으면서, 연초에는 꼭 일기장을 사서 한해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리고 꼭 지키지도 못할 부담스러운 목표를 세우고, 후에 자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끊임없는 계획들이 내 삶의 원동력인걸.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매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허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한 계획은 빡빡했지만, 나만을 위한 계획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부담스러운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고, 일주일에 딱 한 가지의 나만을 위한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시작한 것이 일주일에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기. 육아를 하는 주중에 무엇을 쓰면 좋을지 틈틈이 고민하다가, 주말에 나를 위한 카페에 가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돌아온다. 할 수 있는 목표라 달성하기 쉽고, 달성 후에 주는 쾌감을 자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육아 때문에 느슨해진 삶 속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는 방식이다.
3) 일기 쓰기
: 절반도 못 채울 일기장만 꾸준히 사던 내가, 임신을 하고부터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는 감정을 쏟아내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점차 과거의 내 모습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과 희망을 쓰기 시작했다. 점차 내용이 쌓이면서, 힘든 순간이 오면, 과거에 마음을 다잡으며 썼던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위안을 삼기도 했다.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기 전에는, 일기를 쓰는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빠르게 돌아가는 직장인의 삶 속에서, 스트레스 역시 빠르게 해소해 버렸던 것 같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조금 느린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꼼꼼하게 나를 돌아보게 하는 방법이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나를 이해하게 되고, 나와 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에게 일기를 쓴다는 것은, 엄마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유유히 서핑을 하는 것과 같달까.
돌이켜보니, 나의 자유시간은 주로 남편의 배려(인가 희생인가) 속에서 생겨났다.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졸린 눈을 이겨가면서 아이를 봐주고, 주말에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부인 덕분에 늦잠 한 번 제대로 못 자는 남편이 있었기에 내가 엄마라는 변화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의 남편은 아빠라는 변화에 잘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이를 보면서, 전에 본 적 없던 환한 (약간은 바보 같은) 미소를 짓지만, 점점 핼쑥해져 가는 남편의 얼굴이 스쳐간다. 아이가 생기면 끊겠다는 담배는 아직 못 끊은 것 같지만, 친구들과의 만남은 끊고 집에서 혼술을 하고 있는..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육포를 주문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