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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Oct 19. 2024

고구마, 그래도 두 박스가 어디야!

고구마는 겨울이면 아주 요긴한 간식거리가 된다.

특히 난롯불을 피우기 시작하면 그날부터 군고구마의 유혹을 피할 수가 없.


산짐승 중에서도 노루와 고라니는 고구마잎순을  좋아하고 멧돼지는 고구마에 환장을 한다.

그래서 고구마는 반드시 우리 시야에 보이는 텃밭에만 심어놓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녀석들로부터 보호하며 키우게 된다.

집이 바로 산밑이다 보니  야생동물들이 자주 보인다.

진돗개 두 마리가 열심히 짖어대는 바람에 얼씬도 못하고 있지만

올여름에는 울타리 밖에 있는 텃밭에 옥수수와 단호박을 심었다가 보기 좋게 다 뺏겼다.

하룻밤사이에 대를 부러뜨리고 설익은 옥수수들을 다 갉아먹어 버렸고 단호박은 익기를 기다린 듯이 홀라당 다 파 먹어버렸었다.


고구마 수확을 끝낸 밭도 멧돼지가 내려와서 홀라당 뒤집어 놓고 가는 경우도 있는데 경운기로 밭을 갈아 놓은 것처럼 야무지게  파헤쳐놓고 간다.

후각이 발달한 동물들이다 보니 냄새로 알고 찾아다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집엔 개가 없으면 안 된다.

그것도 짖는 소리로 덩치 큰 개와 작은 개가 구별이 되니 덩치가 제법 있는 진돗개 두 마리는 제 몫들을 톡톡이 하고 있다.


산골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것은 새와 벌레와 야생동물과의 눈치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콩 세알을 심어서 한알은 새를 위해 한알은 벌레를 위해 한알은 사람을 위해 심는다는 말도 있을까?


며칠 전 고구마 수확을 끝냈다.

멧돼지 걱정만 하고 있었더니 보란 듯이 쥐님들이 왕림하시어 거의 삼분의 일 정도를 아작 내었다.

이런!

십팔금 욕 나오기  전이다.

껍데기만 남겨놓고 바가지속 파먹듯이 싹싹 긁어먹었다. 그것도 아주 크고 좋은 것들로 만,

아마 오늘밤 야식 먹으러 나왔다가

" 앗! 내 양식이 다 어디로 갔어" 하고 놀라겠지.

고것 참 샘통이다.

다 캐낸 고구마 밭은

혹시나 멧돼지가 내려올까 봐 작은 덩어리까지 다 챙겨서 박스에 넣어 정리하고 일주일 정도 후숙기간을 거친 고구마는 겨울 내내 다디단 간식으로 변신한다.

어쨌든 고구마 키우기의 숨은 공신은

개들이다 보니 녀석들의 간식거리로도

한몫을 하게 될 것이다.


동네 텃밭을 유심히 보면 고구마를 심어 놓은 집이 별로 없다.

시골 화덕에서 심심찮게 구워 먹기 좋은  고구마임에도 불구하고  심지 않은 것은 아마 멧돼지 습격 때문일 것이라 지레 짐작한다.

그 험난한 과정을 뚫고 그래도 우리 집은 두 박스의 고구마를 수확했으니 올 겨울 간식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쥐가 파먹은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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