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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Feb 25. 2024

마흔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렸을 땐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다. 더욱이 살면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외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굳이 아득바득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때 많은 친구, 선배들은 지금이 아니면 배낭여행을 언제 하겠냐며 하나 둘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는 그들이 부럽기는 했지만 나도 '언젠가는' 하겠지라는 생각때문에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까운 줄도 모르고 이십대를 흘려보냈다.  



살아보니 그 시기에 했다면 좋은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대학생 때는 배낭여행을 해본다든가, 결혼 전엔 한번쯤 혼자 살아보는 것, 이십대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봐야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나는 그 말들을 귓등으로 흘려들었고 마흔이 된 지금,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나이가 들어 하려니 현실적으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해외여행이다. 유럽 배낭여행 뿐만 아니라 해외 나간 경험이 거의 한 손에 꼽을 정도다보니 이제는 해외나가는 게 무섭기까지 하다. 내 손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간 해외는 베트남 하노이가 전부였고, 그 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발리는 패키지로 다녀왔다. 패키지는 편하지만 현지 문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가이드가 정해준 장소는 실패할 확률은 적지만 재미도 없었다.

직장동료 중에 일년에 한두번은 꼭 해외로 여행을 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해외 나가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항공권 티켓팅부터 숙소를 잡고 여행지를 검색하고 일정을 짜는 것까지 일사천리다. 항공권 예약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느끼는 나와는 참 대조적이다.


꼭 완벽해야하는 건 아닌데

이 글을 쓰기 전, 문득 홍콩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항으로 3시간 50분이면 갈 수 있는 그 곳을 여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었다. 기세 좋게 비행기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앱을 켜고 여행 날짜를 지정하자 시간대별, 가격대별로 항공권이 촤르륵 검색되었다. 이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쩌다 한번 나갈까 말까한 해외 여행이니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완벽한 여행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욕심을 내다보니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 시간대가 좋은 걸 고르니 티켓값이 비쌌고, 싼 걸 고르자니 시간대가 별로였다. 이름 모를 항공사도 많고, 과연 안전할지, 자리는 편할지 하나하나 따지고 드니 도무지 선택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머리가 터져버리기 직전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비싸게 주고 산 들 고작 몇 만원 차이였고, 비행기 시간이 안좋다 하더라도 아침에 도착하냐 오후에 도착하냐의 차이였다. 그런데도 고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여행 자체보다 '완벽한 여행'을 하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자주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이왕 가는 거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때문에 아예 시작도 못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경험이 쌓이는 줄 알았다.

내가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마흔이 될 줄은 몰랐다. 스키를 못타는 마흔도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이 나이까지 장롱면허일 줄도 몰랐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아서 선뜻 시작하기가 두려워진다. 

 

나이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처음엔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지금 몇 살이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생각보면 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도, 처음 줄넘기를 배울 때도 언제나 두려웠던 시작이 있었다. 익숙함은 여러번의 경험과 실패를 통해 만들어간다는 걸 어느새 잊어버렸다.


실패가 당연했던 어린시절이 지나가버리면 우리는 더는 좌절하고 싶지 않아서, 못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무엇도 시작하지 않는다. 처음의 낯설고 두려운 기분만 지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걸 알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실패를 겁내지 않아야한다. 더 많은 경험을 쌓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때 무심코 미뤄덨던 무언가가 있다면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마흔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용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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