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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Feb 18. 2024

나는 참 인복도 없어

드라마 미생에서 수많은 명대사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 대사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 파리 뒤를 쫓으면 변소 주변이나 어슬렁 거릴거고, 꿀벌 뒤를 쫓으면 꽃밭을 함께 거닐게 된다잖아.“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 J는 입학 당시 눈에 띄는 성적이 아니었지만 고1 담임선생님을 만나면서 급속도로 성적이 우상향했고 결국 수시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 노력을 하게끔 했던 건 담임 선생님의 믿음과 격려가 큰 역할을 했음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회사 동료 S는 우연히 타 부서의 상사의 눈에 띄이며 함께 이직을 감행했고 그때부터 그녀 밑에서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은 것은 물론 억대 연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운 좋은 사례들을 되짚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 한탄이 나온다.


“나는 참 인복도 없어.”


인복이라고 해서 뭐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살면서 중요한 시점에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 선배가 한명 쯤 있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정도랄까.


취업을 앞두었던 그 때, 자포자기하듯 아무 데나 들어가지 말고 일년 더 공부해서 제대로 된 회사에 들어가라고 조언해주는 선배가 있었더라면.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좌절하고 넘어졌던 그 길목에서 포기하지 말고 한번 끝까지 해보라고 손 내밀어줄 선배가 내게도 있었더라면.

작가가 되는 걸 포기했을 때, 원래 쉽지 않은 길이니 천천히 해도 된다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누군가 나의 깊은 불안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말해주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속절없는 신세한탄을 무덤덤히 듣던 남편이 말했다.


“그랬으면 좋았겠지. 근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나도 이삼십대는 빙빙 돌아서 지금이 된거고 대부분이 그렇지.”


이 세상이 나에게만 유독 쉬운 길을 안열어주는 것 같았다. 나만 힘든것 같고, 나에게만 난이도 '상'의 문제를 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생각했다. 


'나에게도 저들처럼 인생 선배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러나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이 우왕좌왕하면서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찾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 길이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였든, 걸음걸음 푹푹 빠지는 갯벌이었든 결국은 제 갈길을 찾아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걸음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살아보니까 쓸모없는 경험이란 건 없더라.“


가수 겸 배우 엄정화가 어디선가 했던 말이다. 그래, 산다는 건 나만의 길을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정해주는 길이 있었다한들 청개구리같은 내가 그대로 따랐을리 만무하다. 우리에겐 가장 가까운, 그리고 가장 무해한 인생선배 부모님이 있지만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내가 남보다 좀 더 힘들었다고,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억울해하지 말자. 내가 만들어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경험을 의미있게 만들어가면 그뿐이다. 내가 나에게 좋은 선배가 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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