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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03. 2024

연봉은 동결, 마흔이 물었다

“너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뭐야?”


출근 전 회사에 바로 올라가지 않고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젯밤도 저 질문 덕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와서 스무살에 했어야 할 고민을 하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가만, 내가 뭘 좋아했더라...?  


이야기의 발단은 회사의 인사이동에서 시작됐다. 해가 바뀌자 회사는 뒤숭숭했다. 작년 실적이 눈앞에 드러나자 대표는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고, 존경하던 임원 한 분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동시에 그 분이 진행하던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부서와 주요 실장, 팀장들도 자리가 애매해지고 있었다. 그 중엔 우리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미묘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나도 파도 위 돛단배처럼 출렁댔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 내 연봉동결 소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이직을 알아봐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다른 곳에 간들 뭐가 다를까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어차피 회사는 거기서 거기라는 걸. 연봉을 획기적으로 올린다면 모를까 장소만 바뀔뿐 그곳에도 미친년은 존재할테고 일은 똑같이 지겨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다니는 회사에 적응하는데도 거의 2년이 걸렸다. 나이를 먹고 이직을 하니 직원들과 편해지는 것도 힘들었고, 분위기를 익히는데도 꽤 오래걸렸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버티고 버텨 이제 겨우 숨 쉬며 다닐만해 졌는데 다시 다른 회사에서 그 짓을 반복할 생각을 하니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얹어놓은 것처럼 답답했다. 어디 그 뿐인가. 막상 새로운 곳을 알아보려고 하니 10년차 이상을 뽑으려는 곳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내 나이쯤이 되면 다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눌러 앉으려고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마흔이 되면 당차게 퇴사할 용기도, 그렇다고 이대로 머물기도 쉽지 않은 나이라는 걸 뼛속까지 체감하게 된다.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이직이 정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퇴사는 어떨까?  더 할 나위없이 좋았겠지만 아파트 대출금에, 우리 부부 생활비, 노후 준비까지 하려면 퇴사는 더더욱 해서는 안될 선택이었다.

그럼 뭘 해야할까? 지금까지처럼 사는 것도 방법이다.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 후 집에와서 남편과 TV를 보고, 주말이면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그런 소소하고 무난한 삶도 나에겐 큰 행복이다. 그런데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데 정말 이대로 사는 것이 충만한가?


지금도 내 자리에서 분명히 행복하지만 이대로 사는 게 정말 충만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질문일 것 같다. 아직은 내 인생의 반전이 남아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룰 무언가는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일 확률이 높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막혀버렸다. 내 취향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정신차려보니 물건들이 뒤죽박죽 엉켜있는 낡은 서랍 속 같은 마흔이 되어버렸다.


이제 소란한 서랍 속을 정리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가장 크게 마음을 움직이는 것부터 순서를 정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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