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Feb 11. 2024

마흔에 하는 진로고민이라니.

아파트 상가 1층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결국 점포정리 50%행사를 한다고 써붙였다. 얼마 전까지 붕어빵 기계를 들여놓으며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노렸던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나보다.


서른살 초반까지는 회사를 자주 옮겨다녔다. 

조금만 마음에 안드는 일이 생기면 미련없이 그만두고 새로운 곳을 찾는데 거침이 없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았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에 거부감도 없었다. 어렸고 에너지넘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딱 서른 중반까지였다. 서른 여덟쯤 되었을 때 문득 내 10년 후를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자 나이 마흔 여덟이면 대부분 은퇴를 슬 준비하는 나이다. 게다가 전문직도 아닌 마케팅업계에서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수명은 더 짧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내가 임원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마흔 여덟에 뭘 먹고 살지?

도통 답이 보이지 않아 당시에는 답을 미뤄두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미래의 나에게 고민을 떠넘겼다. 마흔이 넘어서는 지금, 나는 여전히 진로 고민을 하고있다.


“이 나이까지 진로 고민을 할 줄 몰랐어.”


우스갯소리하듯 친구 J가 중얼거렸다. J는 스무살 무렵부처 카페를 차리는 게 목표였다.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쪼개 제빵과 커피를 배웠고 집에서 꾸준히 빵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자신의 가게를 차리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내 카페를 차리자니 가게 위치며 컨셉, 메뉴 등 생각해야 할 게 많았고 월세, 권리금, 인테리어 등 아무리 작게 한다고 해고 돈이 수천은 깨질 터였다. 무엇보다 손바닥만한 동네에도 수십개의 카페가 있었고 그와중에도 폐업과 개업을 수도없이 봐왔기에 선뜻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J의 카페 창업은 몇 년째 ‘내년에는...’ 이라는 끝맺지 못하는 말로 계속 미뤄지고 있다.


진로가 걱정인 마흔이 어디 그녀 뿐이겠는가.

나 역시 최근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인원감축이다 팀 통합이다 말이 많다. 회사는 어느때보다 면밀히 직원을 평가하고 실적을 내지 못하는 직원에게는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고있다.

새해가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75-77년생 임원들과 실장들의 인사이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사실상 퇴사종용이었다. 당장 그만두기엔 대안이 없으니 다들 눈치를 살피며 밀려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몸을 낮추고 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언제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이미 그 전부터 팀장급들은 실장 말 한마디에 자리가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사실 언제든지 짤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전처럼 내려오는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말이 이렇게 가슴을 짓누른 적이 있을까.


SNS를 보면 퇴사 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영상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우연히 사업을 시작하면서 겪는 고되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뿌듯해하는 사람들, 직장을 구하지 않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자유가 부럽다가도 ‘나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할 뿐이다.


영상편집을 배워서 유튜브를 해볼까...
책 쓰는 걸 본격적으로 해볼까...
역시 그때 미용 자격증을 땄어야했나...


‘뭘 먹고 사나’ 하는 걱정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얼마전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이 “슬슬 다른 데를 알아봐야할 것 같다”는 말을 흘렸다.

잠든 남편의 얼굴을 쓸어주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벌써 노후를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 어떡하든 직장에 오래 붙어있어야겠다는 다짐, 새로운 진로를 계획하고 뭐든 시작해야 한다는 의지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마흔 여덟에는 뭘 먹고 살아야 하냐는 질문에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어리석게도 마흔즈음이 되면 저절로 내 직업의 전문가가 되는 줄 알았다. 생활의 달인은 못될 지언정 이십대처럼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제는 비어버린 아파트 상가를 보며 생각한다. 카페나 차릴까, 샌드위치 가게를 할까, 편의점고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면 역시 직장인의 종착역이라는 치킨집을 해야하나. 끝이 나지 않는 고민과 사투하는 요즘이다.


이전 02화 남들 하는 건 다 해볼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