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전 회사가 모회사에 흡수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조직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차장 1년차, 10년 넘게 마케팅만 하던 나에게 서비스 기획팀 팀원 자리가 떨어졌다. 낯설고 커리어상으로도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같이 넘어온 전 회사 사람들 모두 하루 아침에 미운오리새끼가 되어 이쪽과 저쪽을 바쁘게 오가며 적응하기에 바빴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당시 조직은 나에게 ‘그만 나가주세요’라고 시그널을 보내고있는 것 같았다. 직속 상사는 내가 회사에 적응을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고, 나에겐 주니어급이 할만한 업무들이 떨어졌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팀원들과의 관계도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묘하게 나만 둥둥 떠있는 기름 같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회의에 들어가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이 즈음의 나도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 그게 오늘일지, 내일일지 알 수 없지만 이 회사에서의 엔딩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매일 좌절감으로 내려앉은 마음을 겨우겨우 끄집어내 출근해야 했다.
이직을 한 직장인 10명 중 약 8명은 이직에 후회한다는 설문조사가 있다. 낯선 환경과 분위기,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와 텃세, 달라진 시스템에 대한 적응 등 ‘아, 그냥 전 회사나 잘 다닐걸’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그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그래도 예전엔 비슷한 또래의 무리에 섞여 3개월 정도면 금새 회사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적응하는데 6개월~1년은 지나야 겨우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조직에 따라 그 이상 걸릴 때도 있다.
특히 직급이 높을수록 뭔가를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침착함을 잃기 쉽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가 연발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같은 40대 경력직이 조직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사람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내 경우엔 다음 몇 가지가 도움이 되었다.
내 편 만들기
회사에 내 편 한 명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 그 한 명이 현 직장에 빠삭한 고인물 팀원이어도 좋고, 나와 직급이 비슷한 타 부서 직원이어도 상관없다. 일단 이 낯선 환경에서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숨쉴 공간이 필요하다. 또 그 사람을 통해 회사 분위기를 빠르게 익힐 수 있고, 또 다른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팀원들과 관계 형성
본진이 탄탄해야 밖에서도 허리를 쭉 펴고 당당할 수 있다. 팀장으로 이직을 했다면 팀원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는데 집중해야한다. 신뢰는 친밀함이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신뢰를 얻는데 더 쉽다. 그렇다고 고압적으로 보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너무 만만하게 보여서도 안된다. 첫 팀 미팅 시, 팀장으로서의 업무 평가 기준을 분명하게 말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제재가 들어간다는 것을 명확히 이야기하자. 적당한 긴장감을 만들어야 팀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후 빠른 업무 파악을 통해 한 두달 내에 팀원들의 중심축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친절하고 겸손하게
이직 후 회사의 불합리함이나 문제점을 발견하더라도 바로 지적하거나 개선하려 하지 말고 일단은 지켜보길 추천한다. 지금은 배우겠다는 자세가 가장 좋다. 직장마다 그들만의 문화와 프로세스가 있다. 그들도 문제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지만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성급하게 판단해서 기존 구성원들의 눈엣가시가 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노리자. 지금은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먼저다.
우선순위는 적응
빠르게 성과를 보여주려 하기 보다 일단은 적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당신이 아무리 능력자라고 해도 이직 직후 성과를 낼 수 있을리 만무하고, 처음부터 너무 힘을 주고 달리면 오히려 빨리 지쳐 번아웃이 오기 쉽다. 어떤 조직도 당장 당신이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최소한 한 두달은 적응하고 파악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갖고 침착하게 하나씩 풀어나가 보자.
“분명히 힘들거야. 적응하려면 적어도 6개월은 걸리겠지. 그래도 좋은 기회인 건 확실해.“
퇴사의사를 꺼냈을 때, 전 직장 본부장님은 진심으로 응원의 말을 건내주셨다. 이 나이게 회사를 옮기는 게 두렵고 무서워 며칠 째 고민하고 있을 때, ‘기회’를 잡으라고 말해준 몇 안되는 분이었다.
기회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일 때가 더 많으며, 설령 적응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에게는 또 다른 문이 열릴 것이다. 인생에는 언제는 다음 문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니 누구에게도 쫄지 말고, 상황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