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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Nov 12. 2024

먼저 쫄 필요는 없다

남편 핸드폰 속 내 이름은 ‘개복치’로 저장되어 있다. 개복치는 ‘유리멘탈’을 뛰어넘어 ‘쿠크다스 멘탈’로 불리는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어류다. 개복치는 죽는 이유도 다양한데, 1. 아침햇살이 강렬해서 사망 2. 바닷속 공기 방울이 눈에 들어가 스트레스로 사망 3. 근처에 있던 동료가 사망한 것에 쇼크를 받아 사망 4. 바다거북과 부딪힐 것을 예감하고 스트레스로 사망, 5. 물이 너무 차가워서 쇼크사로 사망 6. 아쿠아리움에 사는 개복치는 위층 공사 소리에 스트레스받아 사망하는 등 예민의 끝판왕 급이다.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쫄보인지 감이 올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직 전날엔 밤을 꼴딱 새웠다. 팀원들이 텃세를 부리면 어떡하지, 상사가 까다로운 사람이면 어떡하지, 기업 문화가 나와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업무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어떡하지... 걱정과 불안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자기 확신이 필요한 시간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불안해하는 스스로를 보며 도대체 왜 이렇게 긴장이 될까 생각을 해봤다.


첫째, 그동안 너무 편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녔던 전 직장에서의 회사 생활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편하다’ 딱 그 단어만으로 충분했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은 이제 여유로운 생활을 청산하고 ‘빡세게 일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또한 압박과 긴장을 견디겠다는 다짐이다.

수능 시험 당일보다 수능 전날이 더 떨리고 두려운 것처럼 이직도 아직 직접 그 회사에 들어가서 경험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두렵고 무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내 실력에 대한 자신이 없다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만 보면 이런 능력자가 또 있을까 싶지만 사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100% 자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력서에 적어 넣은 성과가 나 혼자만의 것은 결코 아니었을뿐더러, 대부분의 일은 실행에 앞서 전략이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성과의 지분을 따지자면 나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목적지를 알려준 상사의 지분이 더 클 것이다. 그런 상사가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나침반도 없이 어두운 망망대해를 건너면서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셋째, 기대치에 못 미칠까 봐 두렵다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은 실수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로 인해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하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대체로 자기애 과잉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나를 뽑은 사람도 나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내가 팀원을 뽑을 때를 생각해 보자. 팀원이 처음부터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뽑아내길 바란 적 있던가? 그저 빨리 적응해 주는 것만으로 땡큐다. 실력 발휘는 그 이후다.


결국 이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은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결국 나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고, 그게 거대한 두려움으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일단은 해보는 수밖에

이직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하루 100통이 넘는 메일과 눈만 깜박여도 쌓이는 메신저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10명 가까이 되는 팀원들의 업무와 프로세스를 익힐 새도 없이 일이 몰아쳤고, 하루 12시간 꼬박 회사에 매여있다. 별 보고 출근해서 별보고 퇴근을 하며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어떤 날은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 같은데?’라며 자신감이 생기다가도 대부분의 날들은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심이 불쑥 올라왔다.


적응을 했는지 안 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첫 월급을 받았다. 연봉을 꽤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실수령액은 왜 이 모양인가 따져볼 새도 없이 또 전쟁터로 뛰어나간다. 버티다 보면 익숙해진다는 믿음으로 일단은 해보자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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